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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삐걱대는 린치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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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올가을 미국의 여러 도시에 다녀왔습니다. 대학과 지역사회, 기업에서 한국 관련 강연 요청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항상 동맹과 북한, 문재인 정부 등에 대한 미국의 의견을 묻는 질문을 받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인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대북 정책, 미·중 경쟁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저는 늘 명쾌하게 답변할 수 없어 답답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긴장상태의 한·미 동맹에 불안 고조 #미 의회는 한·미 동맹 초당적 지지 #미국 미래, 아시아정책 성공에 달려 #민주주의는 시민 참여·정보가 결정

한국인들이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갖는 정도가 미국인들이 한국에 갖는 관심에 비해 훨씬 더 큰 것은 사실입니다. 방위비 분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동맹 관계 전반에 대해 한국 언론이 보인 큰 관심이 그 예입니다. 미국에서도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한·미 동맹의 긴장 상태입니다.

9월 초 저는 클리블랜드에서 ‘한·미 동맹: 삐걱대는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란 제목의 강연을 했습니다. 한국에선 많이 논의되지만, 미국인들에겐 친숙하지 않은 한·미 관계의 껄끄러운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엔 고도화된 미·중 경쟁으로 변화하는 지정학적 환경, 독단적인 중국 그리고 동맹을 거래로 생각하며 의심하는 미국 대통령도 포함됐습니다. 더 나아가 한·일 관계는 극도로 악화해 지소미아 문제로 이어졌고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미국의 막대한 인상 요구는 한국의 분노와 미국의 책무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후 휴스턴과 보스턴 같은 몇몇 도시에서, 그리고 지난 21일은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저는 강연 제목에서 물음표를 없앴습니다. 한·미 관계가 분명히 틀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연을 하던 바로 그날 뉴욕타임스의 사설 제목 역시 ‘트럼프의 백전백패 대(對)한국 제안: 한국에 대한 무리한 요구로 인해 위험 지역에 또 다른 동맹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였습니다.

다행히 그다음 날 한국은 지소미아의 종료를 유예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아시아 전문가였던 리처드 아미티지와 빅터 차의 공동기고를 실었습니다. 그들은 ‘미국과 한국의 66년 동맹이 곤경에 처해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 벌어진 일련의 충돌 사건들이 트럼프로 하여금 주한미군의 일부를 철수시키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벌이게 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려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 의회가 초당적으로 한·미 동맹에 폭넓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직접 접하고 있습니다.

한·미 국방부 장관이 15일 그랬듯이 정부 지도자들이 한·미 동맹을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린치핀이라고 단언할 때 워싱턴에선 익숙한 수사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중서부의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시민들은 이런 표현을 들을 때 린치핀이 뭐고 그 기능이 어떤 것인지 생각할 것입니다. 린치핀이란 바퀴가 차축에서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트랙터에 농기계를 고정할 때 필수적인 부품을 가리킵니다. 더 크고 복잡한 무언가의 필수적 일부인 것입니다. 미국인 중 자신과 자녀들을 위한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그리고 안전한 미국의 미래가 현명하고 성공적인 아시아 정책에 달려있음을 아는 이들은 이런 이미지에 공감합니다.

지난 70년간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이 지역 사회에서 쌓아온 깊은 유대관계도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밀워키 마케트대학교에서 ‘존 기창 오(John Kie-chiang Oh) 기념 강연’을 할 때 일입니다. 오 박사는 1954년 이 대학에 학부생으로 입학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국군으로 참전했으며 당시 만난 미국 기자의 권유로 학업을 위해 미국 중서부에 왔습니다. 마케트대 대학원장, 가톨릭대 정치학 교수 및 대학원장을 지냈고 『한국 정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위한 탐구』를 비롯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역시 저명한 교수이자 저술가인 아내 보니 오와 그 자녀들을 만나 한국계 미국인 3대가 장학제도·법학·의학·예술 등 여러 분야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 씨 가족과 같이 지난 반세기 동안 한인 사회가 거둔 놀라운 성장과 성공은 또 다른 린치핀을 만들었고 인간적인 유대를 결속시켰습니다.

미국은 현기증이 나고 불안할 정도로 위기가 고조된 정치적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민주주의의 기관들과 그 가치의 정당성 및 힘이, 국제적으론 미국이 이끄는 같은 생각으로 뭉친 동맹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의 생존 및 안위가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밀워키에서는 내년 여름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립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2016년에 위스콘신을 잃었기에 대통령 당선도 놓쳤습니다. 위스콘신은 2020년 대통령 선거의 가장 뜨거운 중심이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동맹은 이 모든 문제에 참여할 준비가 된 정보를 가진 시민들에 달려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그런 미국인들을 만난 것에 감사합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