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학의 무죄라는 1심 판사, 왜 "동영상은 김학의" 특정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뇌물 및 성접대 혐의와 관련한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나와 귀가하고 있다. [뉴스1]

뇌물 및 성접대 혐의와 관련한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나와 귀가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2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공소시효 완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는 판결문 각주에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MB 15년 선고한 정계선 판사, 김학의 무죄 선고 #"공소시효 완료...하지만 동영상 속 인물은 김학의" #"김학의 죄는 없지만 결백한 사람 아니다" 메시지

동영상 속 남성은 김학의

이른바 '김학의 동영상과 사진' 속의 젊은 여성과 성관계를 하는 중년 남성이 김 전 차관이라 특정한 것이다. 법원이 김학의 동영상의 실체를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 판사로 15년형을 선고했던 정계선 부장판사(연수원 27기)는 판결문 각주에 A4 한 페이지 분량을 할애해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김 전 차관은 사진 속 인물의 가르마 방향까지 언급하며 완강히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지극히 합리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라며 배척했다.

부장판사 출신인 신일수 변호사(법무법인 송담)는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피고인이 검찰과 가장 첨예하게 다툰 주장을 배척하는 것이 흔치는 않다"며 "몸을 사리는 판사였으면 안 썼을 것이다. 재판부가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학의 재판장인 정계선 부장판사가 지난해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학의 재판장인 정계선 부장판사가 지난해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하는 모습. [연합뉴스]

Not guilty but not innocent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는 왜 각주까지 달며 김학의 동영상의 실체를 판단해준 것일까. 이에 대한 전·현직 판사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부가 사건 쟁점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것은 자주 있다"(지방법원 현직판사)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세하고 긴 각주는 이례적"이라며 "재판부가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죄는 없지만(not guilty) 결백한(innocent) 사람은 아니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해석도 나왔다.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 여파를 고려했다는 것이다. 지청장 출신 변호사는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매우 불리한 내용을 판결문에 담을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라며 비판적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성접대 구체적 판단은 안해 

1심 재판부는 판결문 본문에선 각주와 달리 김 전 차관의 성접대에 대한 유·무죄 판단을 하지 않았다. 검찰이 성접대와 다른 액수의 뇌물을 함께 묶어 김 전 차관을 기소했는데 이미 공소시효(10년)가 지나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학의 재수사단 단장이었던 여환섭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이 지난 10월 11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구·부산고등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뉴스1]

김학의 재수사단 단장이었던 여환섭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이 지난 10월 11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구·부산고등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뉴스1]

김 전 차관 1심 판결문에는 그래서 각주를 제외한 본문에 성접대와 관련한 내용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김학의 수사팀 관계자는 "재판부가 사회적 논란이 되는 성접대에 대한 판단을 회피했다"고 불만을 비치기도 했다.

검찰은 1심 재판부에서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배척한 제3자 뇌물액 1억원이 2심에서 인정될 경우 김 전 차관의 공소시효가 5년 더 늘어나는 만큼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김학의 동영상'의 존재는 2심에서 다시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김 전 차관이 금품에 성접대까지 받았다면 양형 고려 대상인 범죄 죄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왜 이제서야 

법조계에선 '김학의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란 사실이 왜 이제서야 특정됐냐는 지적도 나온다. 2013년과 2014년 김 전 차관을 수사했던 검찰이 먼저 특정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올해 6월 3차 수사 이후에서야 동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라 밝혔다.

지난 3월 긴급출국금지 조치로 태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공항에서 나오고 있다. [JTBC 뉴스 캡처]

지난 3월 긴급출국금지 조치로 태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공항에서 나오고 있다. [JTBC 뉴스 캡처]

검찰 과거사위 진상조사단 소속으로 김학의 사건을 들여다봤던 박준영 변호사(연수원 35기)는 페이스북에 "1차 수사팀이 김 전 차관의 특수강간 혐의를 무혐의 처분한 상황에서 동영상 속 인물을 특정할 경우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어 부담을 느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적었다. 비리 의혹을 덮어주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은 올해 재수사 과정에서도 김 전 차관에게 강간 혐의를 적용하진 않았다. 증거와 피해 여성의 진술을 봤을 때 윤중천에겐 강간 혐의가 적용돼도 김 전 차관은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검사 출신 변호사는 "김 전 차관이 동영상 속 인물이 맞다고 검찰이 수사기록에 밝히는 것은 김 전 차관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라 비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