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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일본의 자화자찬은 무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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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소동은 조국 사태와 여러모로 닮았다. 전문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파기와 임명을 강행한 것이나, 92일, 35일씩 난리를 치고도 별 소득 없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점도 똑같다. 당연히 지난 22일 청와대가 지소미아 파기를 철회한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다. “그러려면 뭐하러 파기를 선언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한데도 넓은 의미에서의 국익을 위해 치욕을 감수했을 게 틀림없다. 그것이 미국 압력 탓이든, 일본의 필요성 때문이든 말이다.

협상 결과 놓고 양국 딴소리 흔해 #아베 자화자찬 무시하는 게 능사 #감정 삭이고 국익 위해 고민할 때

1968년 미국의 정찰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돼 82명이 억류된 적이 있었다. 존슨 행정부는 11개월간의 협상 끝에 북한 영해를 침범해 잘못했다는 굴욕적인 사죄문에 사인을 하고 포로들을 넘겨받았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한다. “존슨 행정부가 미국의 자존심에 조그만 희생을 감수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이번 역시 문재인 정부의 자존심을 구긴 결정이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한 올바른 유턴이었다.

하지만 이런 결단 이후 청와대가 보이는 행태는 자못 실망스럽다. 자존심까지 꺾어가며 내린 결정이 빛바랠 지경이다. 첫째, 아베 정부의 요란한 선전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럴 필요 없다.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다.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외교를 이용한다는 의미뿐 아니다. 외교 성과를 정권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우려먹는다는 점에서도 내치의 연장이다. 이 때문에 하나의 협상 결과를 놓고 양국이 서로 이겼다며 딴소리를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15개월 넘게 무역전쟁 중인 미·중이 지난달 합의를 이룬 뒤에도 딱 그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 농가에 엄청난 승리”라고 주장한 반면, 중국 관영언론 환구시보는 “비관적 전망이 많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니 아베 정권의 자화자찬 정도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자. 도리어 “(일본 측이) 약속을 어기고 청와대보다 7~8분가량 늦게 발표한 것은 그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반응이 옹졸해 보인다. 특히 트라이 미(Try me)라는 영어 표현을 인용하며 “터무니없는 주장을 계속하면 이쪽도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한 건 감정적 대응이 아닐 수 없다.

둘째, 국내 언론 탓은 그만하라.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렇게 언론을 탓했다. “일본 측 시각으로 일본의 입장을 전달하는 국내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그러자 윤 수석 발언 관련 기사에 이런 댓글이 붙었다. “축구 한·일전 때 한국 공격수가 잘못한다고 지적하면 일본 편인가”라고.

지난 23일 한 신문 사설에 이런 주장이 실렸다. “지난 7월 느닷없이 내놓은 한국 수출 규제 강화는 지난해 이후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싼 사실상의 보복이나 다름없다.… 일본 정부도 수출 규제를 둘러싼 협의를 진지하게 진행하고, 강화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 고. 이 매체가 어딜까. 바로 일본의 아사히신문이었다. 해당 대목만 보면 영락없이 한국 측 시각에서, 한국 입장을 대변한 신문이다. 이처럼 어느 나라든 제대로 된 언론은 특정 정권의 입맛대로 보도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이제는 감정을 삭이고 지소미아 파기 번복에서 무엇을 얻을지, 냉정히 살필 때다. “법과 소시지는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지 않는 게 좋다”고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충고한다. 외교 정책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결정됐는지 세세히 따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번 지소미아 파기 철회는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큰 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야 옳다. 파국으로 치닫던 한·일 관계와 한·미·일 삼각협력을 되살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게 올바른 길이 아니겠는가. 욕은 욕대로 먹고, 그나마 실속도 못 차리는 최악의 사태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