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 효과' 를 아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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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외모를 타고난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여인들의 사랑을 얻을 수 없어 여체를 조각해 사랑을 바쳤고, 그 절실함이 신을 움직여 조각상에서 따스한 체온이 흘렀다고 한다. 신화의 얘기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소망하고 몰두하면 얻게 된다는 이 신화의 상징성은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교육적 용어로 차용되고 있다. 배우는 사람을 높은 기대치로 이끌면 그에 부응한다는 얘기다. 요즘 공연을 만드는 일보다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는 나로서는 뼈저리게 공감한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너희를 믿는다. 너흰 기적이야!'다. 심히 과장된 기대치인데 어느 날 한 학생이 웃으며 '네, 저희는 기저귀입니다'라고 내 환상에 망치질을 했다. 하지만 그 학생의 자신도 모르는 통찰력이 놀랍다. "그래, 그들이 기저귀를 찬 어린애처럼 비워져 있기에 누군가의 기대와 목표를 담아내는 게지,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버나드 쇼는 피그말리온 신화를 희곡으로 재탄생시켰고 그 희곡은 1956년 뮤지컬 'My Fair Lady'가 되었다. 문맹 여인을 귀족으로 만드는 내기에 빠졌던 언어학자가 정작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인데 2002년 웨스트엔드에서 '마이 페어 레이디'의 뉴 버전을 보면서 신화에서 출발한 환상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많은 신데렐라 스토리가 그렇듯 제목에서부터 주체가 일방적인 '나의 여자'는 허구의 행복을 향해 길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광장에서 꽃을 팔면서 만났던 힘겹지만 무한하게 열린 세상으로부터 한 남자(나)의 새장에 갇혀버린 여인이 귀족 숙녀로 눈부시게 변신했을 때 관객들의 감탄 속에서 나는 '아, 한 인생이 종치는구나. 그녀의 다른 삶은 어땠을까?' 따위의 엉뚱한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피그말리온의 조각처럼 하얀 모습을 보며.

요즘 뮤지컬계의 최대 이슈는 일본 뮤지컬 극단 '四季'의 한국 직배에 대한 반발이다. 한국 공연계도 아직 갖지 못한 뮤지컬 장기공연 전용관에 세계 최고 흥행작인 '라이언 킹'을 올리며 한국 관객들의 돈을 일본으로 실어 나를 '四季'는 '四季'대로 좋은 이미지 다지기에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한국의 연기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한국 배우들을 단원으로 채용해 '四季' 시스템에서 연기 교육도 시켰고 앞으로도 연기자와 스태프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겠단다. 버나드 쇼가 '피그말리온'을 통해 언어가 곧 정신임을 강조했듯이 교육을 통해 한국 뮤지컬 종사자들과 관객을 계도하겠다는 건가?

피그말리온 효과는 교육자에게 위선일 수도, 위악일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뭘 지향하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따라서. 더군다나 극단 '四季'는 교육단체가 아니라 사업단체다. 한국의 배우들을 나의 길들여진 조각상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四季'에게서 신화 속 인물인 피그말리온의 허구가 보인다. 베일 너머로.

글=이유리(창작뮤지컬프로듀서/청강문화산업대학 뮤지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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