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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가 된 고슴도치? 시각장애 아이들이 상상한 '그것'들

중앙일보

입력

전북맹아학교 중학교 2학년 송은비(시각장애 1급)양과 박선민(시각장애 2급)군이 도자기 흙으로 만든 작품 '고슴도치'. 밤송이 또는 두꺼비 같기도 하다.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중학교 2학년 송은비(시각장애 1급)양과 박선민(시각장애 2급)군이 도자기 흙으로 만든 작품 '고슴도치'. 밤송이 또는 두꺼비 같기도 하다. 김준희 기자

언뜻 보면 밤송이 같다. 다른 하나는 두꺼비처럼 생겼다. 같은 동물이라는데, 이 작품의 정체는 뭘까.

전북맹아학교, 미술 전시회 열어 #'도마뱀이 된 코끼리'…올해 6회째 #시각·지적장애 학생 70여명 작품 #싸이 그림, 캔버스 점자 블록 등 #투박하지만 보는 이 상상력 자극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 작품도 #김운기 교사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22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도청 기획전시실.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투박하지만, 하나같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전북 익산에 있는 전북맹아학교가 지난 18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일정으로 여는 미술 작품 전시회 '도마뱀이 된 코끼리'다. 올해 6회째로 이 학교 유·초·중·고교 재학생 70여 명이 만든 소조(찰흙·석고 따위를 빚거나 덧붙여서 만드는 조형 미술) 작품과 그림 등을 전시하고 있다. 시각 장애나 지적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최근 1년간 미술 수업과 동아리 활동 중에 만들고 그린 작품이다.

22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도청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전북맹아학교 미술 작품 전시회 '도마뱀이 된 코끼리'. 올해 6회째로 이 학교 유·초·중·고교에 다니는 시각장애 학생 70여 명이 최근 1년간 미술 수업과 동아리 활동 중에 만든 소조 작품과 그림 등을 전시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중학교 2학년 김성민(시각장애 1급)군이 만든 작품 '여러 사람들의 노력'.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고등학교 3학년 김명찬(시각장애 1급)군의 작품 '인생그릇'.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고등학교 3학년 이윤호(시각장애 1급)군의 작품 '문어'. 김준희 기자

전시회 제목을 '도마뱀이 된 코끼리'로 지은 까닭은 뭘까. 전시회가 처음 열린 2014년부터 학생들의 작품을 지도해 온 김운기(34) 미술 교사는 "1회 때 이규선이란 학생에게 찰흙으로 코끼리를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코끼리가 어떻게 생긴지 모르니 몸통이 기다랗고 다리 4개 달린 도마뱀을 만들었다. 이후 계속 이 제목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맹아학교 고등학교 2학년 김대건(시각장애 3급)군의 작품 '다시 태어난 세월호'.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초등학교 4학년 박정상(지적장애 1급)군의 작품 '안녕 나야!'.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고등학교 3학년 박소영(시각장애 3급)양의 작품 '행복한 조각'.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중학교 2학년 송은비(시각장애 3급)양의 작품 '동물원'. 김준희 기자

밤송이 같기도 하고 두꺼비 같기도 한 작품의 정체는 '고슴도치'다. 전북맹아학교 중학교 2학년 송은비(시각장애 1급)양과 박선민(시각장애 2급)군이 도자기 흙으로 만든 작품이다. 두 학생은 저시력 장애인이다. 코앞에 있는 사물을 형태만 흐릿하게 볼 수 있다.

송양 등은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슴도치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고슴도치에게도 손길이 갈 수 있게 가시를 없앴답니다. 고슴도치도 부드럽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실물을 보지 못한 학생들이 저마다 상상한 고슴도치를 각자 개성대로 표현한 것이다.

학생들은 서툰 솜씨지만, 작품마다 자기 관심사와 꿈·고민 등을 담았다고 한다. 작품 안내판도 붙었다.

전북맹아학교 중학교 2학년 박선민(지적장애 2급)군의 작품 '갑자기 분위기 싸이'.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고등학교 3학년 이윤호(시각장애 1급)군의 작품 '보행'.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고등학교 3학년 박소영(시각장애 3급)양의 작품 '야구비'.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고등학교 3학년 김명찬(시각장애 1급)군의 작품 '류현진'. 김준희 기자

중학교 2학년 박선민(지적장애 2급)군은 가수 싸이를 크레파스와 수채 물감을 이용해 그렸다. 작품에 '갑자기 분위기 싸이'라는 제목을 붙인 박군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싸이를 그려보았다.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당신이 참 좋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이윤호(시각장애 1급)군은 캔버스 위에 흙으로 점자 블록과 지팡이를 만들어 붙였다. 이군은 작품 안내판에 "어두운 밤 나는 점자 블록과 흰 지팡이를 벗 삼아 보행해 봅니다. 어렵습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내가 처음 걷는 곳이고, 내가 짚는 이 보행은 자신감이고, 인생의 더듬이라는 사실을 알 것 같습니다"라고 적었다.

22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도청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전북맹아학교 미술 작품 전시회 '도마뱀이 된 코끼리'. 전북맹아학교 학생들이 지난해 '우리들의 눈'이 주관하는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에 참여해 작업한 작품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코끼리국립공원에서 눈이 멀거나 다리를 다친 코끼리를 직접 만져 본 뒤 이 체험을 바탕으로 저마다 상상한 코끼리를 미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이윤호군이 만든 코끼리 작품.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이석호군이 만든 코끼리 작품.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학생들이 만든 대형 코끼리 '전북코끼리'. 지난해 '우리들의 눈' 소속 예술가들과 함께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코끼리국립공원에 다녀온 학생들이 그린 코끼리를 스탬프로 만들어 천에 찍고 각자 만든 다리·얼굴·코 등을 합쳐 작품을 완성했다. [사진 전북맹아학교]

이번 전시회에는 전북맹아학교 학생들이 지난해 '우리들의 눈'이 주관하는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에 참여해 작업한 작품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우리들의 눈'은 시각 장애인과 예술가들이 뭉쳐 예술과 기술을 통해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하는 단체다.

전북맹아학교 학생과 '우리들의 눈' 소속 예술가 등 10여 명은 지난해 8월 12~16일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코끼리국립공원에 다녀왔다. 코끼리 80여 마리가 있는 공원에서 학생들은 눈이 멀거나 다리를 다친 코끼리를 직접 만져 본 뒤 이를 바탕으로 저마다 상상한 코끼리를 미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또 오감(五感)으로 생각하며 그린 코끼리를 스탬프로 만들어 천에 찍고 각자 만든 다리·얼굴·코 등을 합쳐 대형 코끼리 작품 '전북코끼리'를 완성했다.

22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도청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전북맹아학교 미술 작품 전시회 '도마뱀이 된 코끼리'. 올해 6회째로 이 학교 유·초·중·고교에 다니는 시각장애 학생 70여 명이 최근 1년간 미술 수업과 동아리 활동 중에 만든 소조 작품과 그림 등을 전시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22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전북도청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전북맹아학교 미술 작품 전시회 '도마뱀이 된 코끼리'. 올해 6회째로 이 학교 유·초·중·고교에 다니는 시각장애 학생 70여 명이 최근 1년간 미술 수업과 동아리 활동 중에 만든 소조 작품과 그림 등을 전시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중학교 3학년 서대호·임민기·한광훈(시각·지적장애)군의 작품 '우리는 꿈나무'. 김준희 기자
전북맹아학교 학생들이 만든 대형 코끼리 '전북코끼리'. 지난해 '우리들의 눈' 소속 예술가들과 함께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코끼리국립공원에 다녀온 학생들이 그린 코끼리를 스탬프로 만들어 천에 찍고 각자 만든 다리·얼굴·코 등을 합쳐 작품을 완성했다. [사진 전북맹아학교]

김 교사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가 아는 부분만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말이지만, 현실 속 시각 장애인에게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을 저마다 방식대로 소통하고 알아가는 지혜"라고 설명했다.

정문수(49) 전북맹아학교 교장 직무대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문화 속에서 과연 보이는 게 전부 진실인지 의문"이라며 "이 전시회는 시각 장애 학생들이 미술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내면 세계를 보여주고, 우리 사회가 이들을 주목하고 응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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