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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모두에 실망? 나고야 건너뛰고 브뤼셀 가는 폼페이오

중앙일보

입력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의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의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20~21일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장관회의 참석이 목표다. 국무장관의 통상적인 활동이지만, 외교가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그의 방문 시기 때문이다.
국무부는 18일(현지시간) 폼페이오 장관의 브뤼셀 방문 소식을 전하며 “12월 런던에서 열리는 나토정상회의에 앞서 나토 동맹국들과 실현가능한 중요한 사안들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기에는 방위비 분담과 집단 방위 문제(burden sharing and collective defense)가 포함된다”고 특정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관련 트윗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강한 나토가 필요하다”고 보도자료에는 없는 부연설명도 붙였다.
공교롭게도 폼페이오 장관의 브뤼셀 방문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의 운명이 결정되기 직전에 이뤄진다. 지소미아는 22일 자정을 기해 만료된다. 21일께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등을 통해 기존의 종료 결정을 그대로 유지할지에 대한 정부 입장이 발표될 전망이다.
22~23일에는 일본 나고야에서 주요20국(G20) 외교장관회의가 열린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이 호스트 자격이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 한ㆍ미ㆍ일 외교장관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무대다. 이에 지소미아와 관련해 3국 간에 모종의 담판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나고야 G20 외교장관회의에는 오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그의 불참은 몇 주 전부터 외교가에 정설처럼 퍼져 있기는 했다. 탄핵 정국 등 국내정치적 요인때문에 자리를 비우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날 국무부 발표로 폼페이오 장관이 브뤼셀로 방위비 압박 투어를 가면서 나고야는 오지 않는 것으로 사실상 정리가 됐다. 미국 외교의 우선순위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도 열었지만, 중동과 홍콩 시위 문제를 주로 설명했을 뿐 한ㆍ일 관계는 물론 북핵 문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대미 소식통은 “브뤼셀에서 21일에 일정이 끝나면 나고야에 22일에 오는 것이 시간상 빡빡해도 해도 가능은 하다. 지소미아가 유지되거나 종료 결정이 유예되는 방향으로 반전의 가능성이 있다면 폼페이오 장관도 나고야행을 결정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끝까지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 실망감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15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을 접견한 문재인 대통령은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에 대해 군사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고 밝혀 지소미아 종료 방침을 재확인했다.
미국 측은 나고야 G20 외교장관회의에 존 설리번 부장관이나 데이비드 헤일 정무차관이 대표로 참석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데이비드 스틸웰 동아태 차관보와 마크 내퍼 한ㆍ일 담당 부차관보도 대표단에 포함됐다. 지소미아를 종료하는 것으로 결정될 경우 지난 8월22일 처음 정부가 종료 방침을 밝혔을 때처럼 미국은 나고야 현지에서 한국 대표단을 대상으로 깊은 우려와 실망을 표명하거나 공개적인 비판 성명을 낼 가능성이 있다.
만료일을 불과 사흘 남겨놓은 상황에서도 한ㆍ일 간 입장 변화는 없다. 외교 소식통은 “양국 모두 최종 결정자가 관여하는 정치적 사안이 됐기 때문에 상대에 ‘우리가 체면을 차릴 수 있도록 양보조치를 먼저 하라’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청와대는 이달 초 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제안했던 고위급 협의 채널의 개설에 일말의 기대를 하는 분위기다. 일본이 이를 수용한다면 변화의 신호로 보고 해당 채널을 통해 강제징용과 수출 규제, 지소미아 등 한ㆍ일 간 다양한 현안을 다루는 동안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유예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는 일본이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 철회 등 신뢰관계 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경우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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