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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자에 저출산 심각성 설명한 아동 잡지…책임 전가 뉘앙스에 SNS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3일 트위터엔 아동 잡지 위즈키즈 11월호에 실렸던 사진 두 장이 올라왔다. 한 사진엔 비혼 선언이라 적힌 띠를 두른 여성이 폐업한 산부인과를 보며 "저출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라고 말하고 있다. 다른 사진에는 세 아이를 업은 중년 여성이 "저출산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큰일이야"라고 말한다.

지난달 23일 트위터에 올라온 위즈키즈 11월호의 만화 삽화. [출처 트위터]

지난달 23일 트위터에 올라온 위즈키즈 11월호의 만화 삽화. [출처 트위터]

이 두 장의 사진에는 "비혼여성이 저출산 미래를 걱정하는 내용"이라는 설명이 달렸고, 총 1만3000번 리트윗됐다. 매체를 옮겨 다음과 네이버의 여초카페(여성 사용자가 많은 카페) 등에서도 회자했다. "왜 비혼 여성이 저출산 문제에 책임을 느껴야 하느냐"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위즈키즈 삽화, "비혼여성이 저출산 걱정 모습" #여성들, "왜 비혼 여성이 책임져야 하냐"반발

위즈키즈는 교원그룹이 매월 펴내는 아동 교육용 잡지다. 이 잡지 11월호는 "'출산율 제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주제로 12페이지에 걸쳐 다뤘다. 주인공은 비혼선언을 한 위즈키즈 편집부 김수진 기자로, 그가 꿈속에서 동료인 워킹맘 안팀장을 만나 저출산의 미래를 알아보는 내용이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꿈속에서 유령과 함께 자신의 과거·현재·미래를 보는 동화 '크리스마스 캐럴' 형식을 빌려, 구어체 기사와 만화를 곁들였다.

이 기사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출산율(과거)과 폐교 및 정년연장으로 인한 국민연금 상승 문제, 빈집과 병원 부족(현재)와 대책 방안(미래)이 담겼다. 또 대책을 다룬 부분에선, 정부의 복지 정책으로 출산율이 올라간 사례로 북유럽의 육아 휴직 의무화를 꼽기도 했다.

저출산 심각성 깨달아야 하는 이는 비혼자?  

하지만 온라인에서 비판이 뒤따른 건 내용보다 이야기 전개 방식(스토리텔링)때문이다. 비혼여성이 다둥이 엄마에게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듣는 존재로 그려져, 마치 비혼자가 각성해야 할 존재로 그려져서다.

이 만화를 보았다는 두 아이의 엄마 김모(35)씨는 "이 만화를 읽은 여자아이라면 '저출산 문제가 시급하니 난 꼭 아기를 낳아야지'라고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지 않나. 교육용 잡지니 만큼 저출산에 대한 정부 책임도 더 예민하게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말했다.

위즈키즈 저출산 특집의 마지막 부분. 김나현 기자

위즈키즈 저출산 특집의 마지막 부분. 김나현 기자

출판사 "비혼 여성 책임 전가 의도 없어…고개 숙여 사과드린다"

이에 지난달 26일 출판사 교원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담당 기자가 여성이어서 여성 화자를 내세운 것"이며 "비혼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부분이 없도록 곳곳에서 저출산엔 다양한 이유가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했다.

위즈키즈 11월호 특집 기사에 담긴 만화 삽화. 저출산 원인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다. 김나현 기자

위즈키즈 11월호 특집 기사에 담긴 만화 삽화. 저출산 원인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다. 김나현 기자

교원그룹 관계자는 "위즈키즈 관련 기사는 대부분 담당 기자를 주인공으로 스토리텔링 하는데, 저출산 콘텐트도 기존 틀에서 만들다 이런 실수를 했다"며 "내용뿐 아니라 표현 방식까지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한국도시지리학회지에 실린 논문 「저출산‧고령화 시대 한국의 인구 정책에 관한 비판적 고찰」에선 비슷한 문제를 언급했다. 이 논문은 "합계 출산율 같은 성과 지표를 통한 출산 장려 정책은 사회·경제적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한 여성에게 책임 전가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런 인상을 남기는 건 (출산율 재고의) 실효성 측면에도 절대 좋지 않다"고 밝혔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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