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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였지만 흙탕물만…열목어 뛰놀던 내린천 비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강원 인제군 내린천이 흙탕물로 변한 모습. 인제군은 하천 상류 고랭지 밭의 경작 규모가 커지며 토사가 인북천과 내린천으로 유출돼 물줄기가 흙탕물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인제군 내린천이 흙탕물로 변한 모습. 인제군은 하천 상류 고랭지 밭의 경작 규모가 커지며 토사가 인북천과 내린천으로 유출돼 물줄기가 흙탕물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1급수에서만 사는 열목어로 가득해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을 듣던 내린천인데…. 하천이 흙탕물로 변하자 열목어도 사라졌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강원도 인제군 상동리 인제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인북천·내린천 살리기 포럼’에 참가한 이은수(68) 전 인제 기린면 미산 2리 이장이 흙탕물 피해를 호소하며 한 말이다.

“물만큼 많았던 열목어 사라졌다” #인삼·감자 경작지 늘며 토사 유출 #‘래프팅 성지’였는데 관광객도 뚝 #전문가 “농지 평탄화·정비 절실”

이씨는 “내린천으로 놀러 온 관광객들이 흙탕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해결할 방법이 없느냐고 되묻는 상황”이라며 “흙탕물을 여과해 방류할 수 있는 기술 도입 등을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1급 청정수가 흐르던 인제군 인북천과 내린천이 흙탕물로 변하면서 주민들의 속앓이를 하고 있다. 래프팅 등 레저스포츠로 유명한 이곳 하천의 생태계 파괴는 관광객 감소와 농작물 피해 등 주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인북천은 인제군 서화면 가전리 휴전선 부근 가득봉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다가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에서 소양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내린천은 홍천군 내면 동쪽의 계방천과 남쪽 자운천이 합류한 뒤 인제군 기린면의 방태천과 합류 후 소양호로 흘러간다.

인제군은 상류 고랭지 작물 경작지 규모가 커지면서 재배지에서 흘러내리는 흙이 인북천과 내린천을 흙탕물로 변하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인북천 유역 양구 해안면 만대지구의 경작지는 3404곳으로 1680㏊에 달하고, 내린천 유역 자운지구의 경작지는 3748곳, 1142㏊다. 경사도가 10~20도로 가파른 이들 경작지에선 주로 인삼·감자·무·배추 등 고랭지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강원도와 한국수환경관리연구소가 공개한 ‘2018 소양호 상류 오염원 관리대책 시행계획’에 따르면 양구군 해안면 인삼 경작지의 토사유실 가능 추정치는 29만7480t에 달했다. 이어 감자가 23만8307t으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 양구군 해안면 작물별 재배지 면적은 인삼이 4.73㏊로 가장 많았고, 감자가 2.79㏊, 벼 1.44㏊, 과수 1.42㏊ 순이었다.

그동안 흙탕물 저감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양구지역에 540억원, 홍천 300억원, 인제 170억원 등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돼 대형 침사지 준설, 흙탕물 우회로 개설, 돌망태 설치 등 흙탕물 저감 시설을 설치했다. 1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주민들은 흙탕물 저감 대책이 원인보다는 발생에 따른 대처에 집중돼 피해가 지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포럼에 발제자로 나선 한국수환경관리연구소 장창원 박사는 “농산물 생산을 위한 지속적인 객토, 손·망실된 저감시설 보수의 어려움 등으로 흙탕물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며 “대규모 경지정리 사업을 통해 기존 농경지를 계단식으로 평탄화하고, 농경지 수로망과 침사지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토사 유출의 주된 오염원인 고랭지 밭의 무분별한 객토로 매년 고랭지 밭의 지형정보가 변경됨에 따라 경작행위 관리 및 관리지역 모니터링 등 체계적인 오염원 관리를 위해 ‘고랭지밭 지리정보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인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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