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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빌어먹을 세상 따위, 함께라면

중앙일보

입력

빌어먹을 세상 따위 시즌2   [IMDb]

빌어먹을 세상 따위 시즌2 [IMDb]

“제임스는 살았을까, 죽었을까?” 한 발의 총성으로 마무리되는 충격과 공포의 시즌1이 끝나고 그 답을 알기까지 무려 2년이 걸렸다. 11월 5일 시즌2 공개를 일주일 앞두고 나온 예고편에서조차 제임스(알렉스 로더)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웨딩드레스를 입은 앨리사(제시카 바든)와 총을 든 뉴페이스의 여성이 등장한다. 깨발랄했던 시즌1엔 없던 사뭇 진지한 누아르 풍의 떡밥도 가세한다. 지난 2년,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나저나 제임스는 어떻게 됐을까.

이런 사람에게 추천
<빌어먹을 세상 따위>는 1화의 길이가 20여분, 총 8화,
여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긴 러닝타임이 싫었다면.
아이유의 띵작이 궁금하다면
대사의 쾌감에 빠져들고 싶다면

2년 만에 재회, 어떻게 지냈니?

제임스, 살아있었다! [사진 IMDb]

제임스, 살아있었다! [사진 IMDb]

제임스의 생사를 중심으로 시즌2를 설명하면 딱히 할 얘기가 없다. 생각보다 일찍 등장한다. 그렇다. “제임스는 살아있다”. 대략 극의 5분의 1지점이다. 이 말은 제임스와 앨리사의 재회가 시즌2의 주요 골격은 아니라는 의미다.

시즌1이 울적한 십 대의 도발에 가까운 로드무비였다면 시즌2는 앞선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트라우마에서 서로를 구원한다는 내용이다. 정서적으론 더 깊어졌지만 쾌감은 좀 덜하다.

시즌2에서 매개 역할을 하는 인물은 뉴페이스 ‘보니’(나오미 애키)다. 두 주인공 못지 않은 상처와 다크함을 지닌 보니는 시즌1에서 앨리사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려다가 의도치 않게 죽임을 당한 변태 사이코패스 교수(그냥 이렇게 부르자)의 제자이자 애인이다.

변태 교수의 사랑이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 보니는 그가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결심하고 두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총알을 보낸다.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제임스는 결혼을 앞둔 앨리사를 다시 찾아가고 그들 사이에 보니가 틈입한다.

우리 제임스와 앨리사가 달라졌어요

앨리사는 누군가와 결혼을 했다.  [사진 IMDb]

앨리사는 누군가와 결혼을 했다. [사진 IMDb]

시즌2에서 제임스와 앨리사는 내면적으로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인다. 어릴 적 엄마의 극단적 선택을 목격한 뒤 자신의 감정을 살해하고 스스로를 사이코패스라고 여겼던 제임스의 모습은 이번 시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앨리사 역시 다소 누그러졌다. 감정 표현에 서툴러 못된 말과 행동만 골라하던 까칠함은 무뎌졌고, 이제는 스스로의 트라우마까지 마주하려는 성숙함을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는 제임스와 앨리사 각자의 내레이션으로 극을 이어간다. 개별적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마음의 소리’(?)가 관객에게는 거의 실시간으로 통합돼 보여진다. 덕분에 두 사람의 관계가 위계적이지 않고 때때로 유머도 준다.

제임스 “내가 보냈던 편지 사과할게” 앨리사 “무슨 편지?” 제임스 (못 받았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사라진 것 같았어요) 앨리사 “아 그거?” 제임스 (다시 올려놓는데, 그새 훨씬 무거워졌어요) “정말 정말 미안.”

제임스와 앨리사의 뒤를 쫓는 보니.  [사진 IMDb]

제임스와 앨리사의 뒤를 쫓는 보니. [사진 IMDb]

건조하면서도 감성 충만한 인물들의 대화는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강력한 매력 포인트다. 오죽하면 연관검색어에 대사, 대본이 있을까. 소장하고 싶은 분들은 찾아보시라.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무게를 덜어내는 방법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주인공들은 죄책감 비스름한 것들을 짊어지고 다닌다. 시즌2에서는 앨리사에게 ‘빈 집’으로, 제임스에게는 ‘아빠의 유골함’으로, 보니에게는 ‘권총’으로 상징화된다. 이런 요소들은 극의 전개 틈틈이 트라우마 형태로 플래시백 하면서 끊임없이 주인공들을 괴롭힌다. “무언가로부터 달아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계속 짊어진 채로 살아가고 있었어요.”(앨리사)

세상의 끝에서 만난 세 사람.  [사진 IMDb]

세상의 끝에서 만난 세 사람. [사진 IMDb]

이번 시즌에서 가장 묵직한 씬은 주인공들이 이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장면들이다. 제임스는 부모님이 처음 만난 장소에서 아빠의 유골을 뿌리는 것으로, 앨리사는 변태 교수 사건이 있던 빈 집에 홀로 찾아가는 것으로, 보니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으로 매듭을 짓는다. 꽤 잘 세공돼 있어서 억지스럽진 않다.

결말은 해피하다. 시즌1이 토마스 얀 감독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를 연상케 한다면 시즌2의 엔딩은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게 엉망이고 불안하고 미숙하지만 묘하게 희망적인, ‘시즌3’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게 하는 완벽한 엔딩이다.

글 by 정나미. 기자, 영화보며 그루밍

TMI

<빌어먹을 세상 따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음악이다. 영국 록밴드 ‘블러’(Blur)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인 그레이엄 콕슨이 많았는데 완성도가 높다. 매우 다양한 장르를 구사하는데 변화무쌍한 이들의 여정과도 매우 잘 어울린다. 국내에 정발돼 있으니 작품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면 음악도 정주행해보시길.


제목  빌어먹을 세상 따위 시즌2 (THE END OF THE F***ING WORLD)
감독  데스티니 카라가, 루시 포브스
출연  제시카 바든, 알렉스 로더, 나오미 애키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평점  IMDb 8.5 / 로튼토마토 88% / 에디터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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