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정답'
복수정답의 늪, 수능 이어 변리사시험도 못 피해갔다/17일 09시
단 한 문제 차이로 합격의 당락이 갈리는 국가고시에서 '복수정답'이란 단어만큼 수험생의 마음을 애끓게 하는 것도 없다.
법원 "올해 1차 변리사시험 출제 오류"
오류가 발견돼도 출제 기관에서 시험의 신뢰성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아 복수정답 논란은 종종 소송을 통해 결론이 나게 된다. 그리고 이번엔 국가자격시험인 변리사 시험이 그 대상이 됐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31일 2019년 1차 변리사시험 A형 33번 문항(B형 32번)의 복수 정답을 인정하며 소송을 제기한 A씨의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행정법원은 해약금 관련 문항에서 기존 대법원 판례를 적용할 경우 복수 정답을 허용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소송을 제기한 A씨는 1차 시험의 합격 평균선인 77.5점을 넘게 돼 불합격 처분이 취소됐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올해 변리사 2차 시험은 이미 지난 7월 치러졌다. A씨는 산업인력구조공단이 항소하지 않을 경우 내년 7월에 2차 변리사시험을 볼 수 있다.
메가로이어스에서 형사소송법을 강의하는 김정철 변호사는 "불합격처분이 취소될지라도 출제기관의 오류로 이미 A씨는 상당한 기회비용을 치렀다"며 "출제 기관은 문제 출제에 정말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복수정답 논란, 최악은 2014학년도 수능
국가시험에서의 복수정답 소송이 있었던 건 이번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능이다. 특히 그중 최악은 2014학년도 세계지리 복수정답 논란이다.
교육부는 당시 대형로펌까지 선임하며 수험생들과 1년여간의 소송전을 벌였다. 하지만 끝내 패소했고 복수정답이 인정됐다. 피해자만 1만 8000여명에 달했다.
부산고등법원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과정은 물론 이의처리 과정에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수험생에게 이례적으로 200만~1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출제위원들이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총생산액에 대한 2009년 통계만 보고 그 내용의 변화를 확인하지 않은 채 2014년 수능에 출제한 것은 국가의 중대한 과실이라 판단했다.
교육부는 2심 판결이 나오고서야 피해자에 대한 대학 추가합격 등 구제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문제는 '3점'짜리 고난도 문항으로 수많은 수험생의 대학 입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교과서에 나온대로 문제를 냈으니 문제가 없다"던 교육부의 황당한 해명과 뒤늦은 대처에 학생과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2015년, 2017년에도 출제 오류
수능 출제와 관련한 교육부의 실수는 2014년 사태 이후에도 있었다. 2015년 수능에선 영어와 생명과학 시험에서 복수의 정답이 인정됐다.
2017년 수능에선 한국사에서 복수정답이 인정됐고 물리2에선 '정답없음'이 인정되며 전원 정답처리됐다. 2018년과 2019년 수능은 오류가 없었다. 올해 치러진 2020년 수능은 11월 18일까지 이의신청을 받는다.
수능뿐 아니라 공무원 시험에서도 문제 오류가 발견되며 탈락자가 추가 합격한 사례가 있었다.
9급 공무원 시험에서도 출제오류
2017년 9급 공무원 공채시험에선 한국사 문제 오류로 98명이 추가 합격했고 360여명의 수험생이 면접 기회를 얻었다.
이 역시 서울고등법원까지 이어진 소송전 끝에 정부가 패소하며 내려진 결정이다. 당시 일부 수험생들은 정식 절차를 거쳐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됐다. 하지만 이미 2년여의 세월이 지난 뒤였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