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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잡계 세상서 ‘생존 가능 국가’ 위한 시스템 교육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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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호 30면

김대식의 ‘미래 Big Questions’ <6> 교육의 미래는?

렘브란트 ‘툴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1632). [헤이그 마우리트하위스 왕립미술관]

렘브란트 ‘툴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1632). [헤이그 마우리트하위스 왕립미술관]

무덥고 습한 여름이 지나 오랜만에 ‘쌀쌀함’이 느껴지는, 더는 덥지도, 아직 상당히 춥지도 않은 계절. 가을이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유이겠다. 하지만 가을이 그다지 즐겁지만 않은 이들이 있었다. 바로 며칠 전 끝난 수능 시험을 준비한 수많은 고등학생이다. 이해와 해석이 아닌 단순히 암기 능력을 평가하는 듯한 대한민국 수능 문제들이 21세기 인재를 육성하는 데 얼마나 도움 될지에 대해선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겠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엔 SAT와 A-level, 독일과 프랑스엔 아비투어(Abitur)와 바칼로레아(Baccalaureat)가 있듯, 전 세계 많은 고등학생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테스트와 도전을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개인의 노력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일한 고등교육 기회를 주는 것 역시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모두가 모두를 견제·협업하는 미래 #국가 운영체제 업그레이드가 시급 #다가올 위기에 대응 ‘역사적 수능’ #대한민국은 몇 점 나올지 질문해야

시공간 넘나들며 서로의 꿈·생각 속삭여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인류는 언제부터 공부하기 시작한 걸까? 인공지능이 등장한 미래 세상에서도 여전히 공부는 해야 할까?

1000억 개 신경세포들 간의 100조 개 연결고리들(시냅스)로 구성된 뇌. 지난날들의 아름다운 기억,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나’라는 내면적 존재…모두 시냅스 연결고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현대 뇌과학은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연결고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시냅스 수가 얼마 안 되는 하등동물들은 유전적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주어진 자극에 정해진 반응만을 넘어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복잡한 인간의 뇌를 유전자만을 통해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DNA에 입력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연, 아니 진화과정은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 고등 동물들은 태어나 특정 기간 ‘결정적 시기’를 경험한다. 미완성 상태로 세상에 태어난 뇌가 주변 환경과 경험을 통해 완성되는 시기다. 고양이는 첫 4~8주, 원숭이는 첫 1년, 그리고 인간은 첫 10~12년 정도라고 알려진 결정적 시기 동안 뇌는 마치 젖은 찰흙 같아 환경과 경험을 통해 하드웨어적으로 바뀌고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여성작가 모습. [나폴리 고고학박물관]

폼페이에서 발견된 여성작가 모습. [나폴리 고고학박물관]

덕분에 뇌는 앞으로 살아남아야 할 환경에 최적화된다. 반대로 우리의 뇌를 완성한 바로 그 환경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편한 세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고향”이라고도 부른다.

진화의 핵심은 환경적 변화와 생명체 적응 속도의 영원한 경주다. 수천만, 수백만 년이 걸려 변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은 유전자 차원에서 가능하다. 여러 세대를 거쳐 가며 생존 확률을 높이는 유전자들이 자연스럽게 확장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수십, 수년 만에 빠르게 변해버린다면? 유전적 적응만으로는 부족하겠다.

그런 관점에선 ‘결정적 시기’를 유전적 진화의 확장으로 해석해볼 수 있겠다. 결정적 시기를 통해 상대적으로 빠른 환경적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인간의 뇌는 만들어졌다. 그런데 불행히도 큰 문제가 하나 더 남아있다. 인간이 스스로 세상을 바꾸어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이야기일까? 화산이나 대홍수 같은 예외적 사건만 제외하면 대부분 인간은 언제나 같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늙고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였던가? 말 그대로 ‘지혜로운 원숭이’인 인간은 그 누구보다도 많은 여유 시간을 확보했다. 대부분 동물은 하루 생존에 모든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비슷한 원숭이마저도 하루 24시간 중 적어도 5시간 동안 음식을 씹어야만 충분한 칼로리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불과 요리를 발견한 인간은 1시간 정도의 씹는 행동을 통해 그날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섭취할 수 있다. 원숭이보다 매일 4시간이나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얻은 인간은 그 시간에 세상을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고 동물을 키우고, 도시를 세우고 증기기관과 핵무기와 인터넷을 발명한 사피엔스에게 ‘환경’이란 대부분 만들어진 인조적 세상일 뿐이다.

하지만 인조적 환경은 자연의 시계를 따를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강산이 자연적으로 변하는 데는 적어도 수백, 수천 년이 걸리겠지만, 새로운 도로와 집은 몇 개월이면 완성할 수 있고, 대한민국에서는 몇 주마다 새로운 치킨집과 카페가 오픈했다 사라지곤 한다.

결정적 시기만으로는 인간이 만든 환경적 변화에 적응하기 불가능해진 역사적 변곡점을 우리는 ‘문명’이라고 부른다. 문명의 중심에는 글, 책, 그리고 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글, 책, 교육이 발명되기 전 인간은 인지적 ‘섬’이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만을 통해 학습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언어와 이야기 역시 물론 중요했다. 하지만 말은 보존되기 어렵다. 직접 들은 이들에게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과 책은 다르다. 2000년 전 폼페이에 살던 한 여성 작가와도 같이 이제 인류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로 귓속에 새로운 이야기와 꿈과 생각을 속삭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모든 지식과 경험이 글과 책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건 아니다.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명작 ‘툴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에서 툴프 박사는 책과 칠판이 아닌, 한 사형수의 시체를 가지고 인간의 신체를 설명한다. 현실을 통해 현실을 가르치고 있다.

모두 공부할 때 노는 건 미래를 포기한 것

1900년 프랑스 잡지에서 묘사한 21세기 교실 모습.

1900년 프랑스 잡지에서 묘사한 21세기 교실 모습.

그렇다면 미래 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선생님이 아닌 인공지능이 수업은 담당할까? 책과 칠판 대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등장할까? 아니면 1900년도 프랑스 잡지에서 소개된 것 같이 미래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뇌에 ‘지식을’ 기계적으로 입력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우리가 가장 걱정해야 할 미래 교육은 학교에서의 교육이 아닐 수도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에 비해 너무 느린 정치적 합의 절차. 개인의 능력과 혁신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늘어만 가는 불평등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이 모두가 모두를 견제하며 동시에 협업해야 하는 초복잡계 세상. 우리가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미래 교육은 개인이 아닌,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변해가는 미래세상에서도 생존 가능한 국가를 위한 시스템 교육과 국가운영체제 업그레이드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 역시 해볼 수 있겠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수능 시험을 준비한 학생들과도 같이 혹시 국가를 위한 ‘수능’ 역시 존재하는 건 아닐까?”  앞으로 다가올 국가적 위기와 도전을 대비해 오늘 이미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 그런 ‘역사적 수능’ 같은 거 말이다. 전쟁, 경제위기, 혁명은 평범한 국가라면 매일 경험하는 일들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평범한 국가라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미래 위기와 갈등을 오늘 대비해야 한다. 스웨덴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독일이 경제위기를 대비해 재정적자를 줄이고, 프랑스가 인공지능 시대에 맞지 않는 기업 규제들을 과감하게 없애는 이유다.

모두가 힘들게 공부하고 있을 때 걱정도 없이 게임과 놀이에 빠진 고등학생을 본다면, 우리는 생각할 수 있겠다. 혹시 본인만 알고 있는 비밀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물론 기적 같은 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미래를 포기했거나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반드시 올 미래의 테스트를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 모두 솔직하게 질문해야겠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수능 점수는 몇점이나 나올까?”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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