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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인구정책, 스웨덴 말고 베트남에서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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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요즈음 필자는 여러 지자체의 인구정책 부서로부터 문의를 자주 받는다.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니 해외의 ‘인구정책 선진 사례’를 배워오고 싶은데 어디를 가야할지 묻는 내용이다. 나는 해외 어디에도 우리나라와 같이 초저출산의 덫에 오랫동안 갇혀있는 곳은 없으니 대응 사례를 보여줄 해외는 없다고 답을 한다. 대신 인구정책을 30년 뒤 미래를 내다보며 제대로 기획해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베트남이니 베트남의 중앙 및 지방정부에 가서 인구정책 관련 행정 환경을 좀 탐구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그럼 어김없이 ‘베트남 말고 프랑스나 스웨덴 같은 선진국을 소개해 달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나는 다시 유럽의 정책 사례가 사회적 맥락이 다른 우리나라에 적용될 수 없으니 베트남 정부가 인구를 어떻게 여기는지, 인구정책의 목표는 무엇인지, 그 목표를 위해 어떻게 정책을 만들고 전달하는지를 보고 오는 게 더 큰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지금까지 필자의 말을 듣고 베트남으로 인구정책을 배우기 위해 떠난 지자체는 한 곳도 없다.

인구를 기반으로 기획되는 #지속가능한 베트남의 미래 #국가의 지속 가능성 높인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은 베트남이 우리보다 못 사는데 뭘 배울게 있겠냐고 생각한다. 틀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인구정책만은 베트남이 우리보다 한 수, 아니 몇 수위에 있다. 우리가 인구정책을 마련할 때 참고할 것들이 넘친다.

현재 베트남에는 약 9600만 명이 살고 있는데, 작년에 약 155만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약 5000만 명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약 32만 명이 태어났다. 우리나라는 지난 15년 간 여성 한명이 한명의 아이만 갖는 초저출산 현상을 겪고 있지만 베트남은 같은 15년 간 평균 2명을 유지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과거 출산율이 높았을 때 베트남과 상황이 비슷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1983년 한 해만 여성들이 평균 2명의 자녀를 낳았고 출산율은 계속 낮아졌다. 1983년 약 77만 명이 태어났는데 1987년 약 62만 명으로 4년 만에 거의 15만 명이 줄었다. 베트남은 20년 째 출생아 수 130~150만 명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1987년 태어난 아이의 수가 저렇게 줄어들었으면 가족계획을 그만두었어야 했다. 하지만 가족계획정책은 1996년까지 이어졌다. 베트남도 지난 30여 년간 강력한 가족계획정책을 펼쳐왔다. 그런데 우리와는 달리 출산율을 무조건 낮추려고 하지 않고 2명 유지를 목표로 설정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앙정부에 인구 및 가족계획총국(總局)을 두고 약 250명의 공무원이 매달리고 있다. 그뿐 아니다. 전국에는 우리나라의 도에 해당하는 63개의 성이 있는데, 각 성에는 총국에서 만들어진 정책을 지방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지국(支局)을 두었다. 각 지국에는 20~30명이 인구정책 업무만 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전국의 모든 마을 공동체에는 약 12만 명의 인구활동가(population collaborator)들이 각 마을에서 생기는 출생, 이동, 사망을 조사하고 주목할 만한 인구 변동을 항상 모니터링하여 지국에 보고한다.

아직 농업이 기반이고 정치적으로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이런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는 것이지 그리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베트남 정부가 어떻게 인구정책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지 알면 우리나라의 인구정책 환경이 얼마나 열악하고 조악한 수준인지 금방알 수 있다.

최근 베트남 정부는 가족계획 중심에서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인구를 기획하는 것으로 국가의 인구정책 방향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출산율이 오랫동안 2명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가족계획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반면 경제가 성장하면서 어떤 특성을 가진 인구가 언제 어디에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해졌다. 경제가 성장하면 청년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80년대부터 청년들의 도시로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인구가 늘어나다보니 자원도 도시로 집중되었다. 최근에는 상황이 악화되어 그냥 도시가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으로만 청년인구가 집중되고 있고 지방의 경제는 파산직전까지 와 있다. 베트남 정부가 우려하는 미래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국가가 균형있게 발전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베트남 정부는 과감하게 인구정책의 대상을 가족계획에서 발전과 인구이동으로 전환한 것이다. 베트남 정부가 정책의 방향을 바꾼 이유는 인구정책 효과가 25~30년이 지나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베트남에 찾아가라고 한 이유다. 우리나라의 인구정책은 30년 전이나 오늘이나 단지 출산억제가 장려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근시안적이다. 물론 베트남의 인구정책도 허점이 많고 우리와 다른 맥락이 존재한다. 하지만 최소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떻게 인구를 기획하는지, 이를 위해 정부 조직을 어떻게 정비하는지 등 인구정책이 만들어지고 실행되는 과정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될 수 있다. 과연 우리도 미래를 기획하는 인구정책이 가능할까?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