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교수 "욱일기 불만 한국뿐 아냐, 도쿄올림픽 사용 IOC가 막으라"

중앙일보

입력 2019.11.04 11:19

8·15 전국 노동자 대회 참가자 등 일본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전범기인 욱일기를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8·15 전국 노동자 대회 참가자 등 일본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전범기인 욱일기를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ㆍ일 역사를 연구해온 미국 교수가 내년 일본 도쿄올림픽에서 욱일기 사용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했다. 이 교수는 IOC 위원들에게 욱일기가 오늘날 일본에서 실패한 전쟁 노력에 대한 영광을 재연하려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라고 촉구했다. 욱일기로 심기가 불편한 국가가 한국만이 아니므로 도쿄올림픽에 대한 우려와 보이콧 요구가 중국·싱가포르·필리핀·미얀마 등으로 퍼지기 전에 IOC가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 英가디언 기고
"2028년 LA올림픽서 남부연합기 들겠다는 꼴
욱일기는 실패한 전쟁의 영광 재연 시도일 뿐
중국·싱가포르·필리핀도 우려·보이콧 가능성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역사서 배워 금지해야"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넷티컷대 역사학과 교수 [대학 홈페이지 캡처]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넷티컷대 역사학과 교수 [대학 홈페이지 캡처]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교수는 지난 1일(현지시간) 가디언에 ‘공포의 역사가 서린 일본 욱일기는 도쿄올림픽에서 반드시 금지돼야 한다'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더든 교수는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개막식에서 관중들이 ‘남부 연합기‘(American Confederate flag)를 흔드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만약 일본 국민이 욱일기를 내건다면 내년 여름 도쿄 올림픽에서는 마음에 상처를 주는 장면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남부 연합기는 미국 남부의 유산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시위에서 들고 행진하면서 인종 차별과 극우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더든 교수는 “욱일기가 기업 광고에 종종 쓰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전범기이며, 1870년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 때까지 사용된 일본 제국주의 깃발"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한국이 올림픽에서 욱일기 사용 금지를 요청한 데 대해 일본 측이 “정치적 표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며 거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더든 교수는 “IOC는 욱일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권한을 갖고 있다”며 “IOC 위원들은 욱일기의 역사와 함께 오늘날 일본에서 욱일기가 어떻게 특정한 정치적 표현으로 사용되는지에 주목하라"고 주문했다.

알렉시스 더든 교수의 가디언 기고 [홈페이지 캡처]

알렉시스 더든 교수의 가디언 기고 [홈페이지 캡처]

 그는 “일본 우파에게 욱일기는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한 집단적 노력의 일부"라고 했다. 특히 그는 “욱일기는 ‘한국인을 학살하자'는 표지판을 들고 행진하는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회원인 것으로 여겨지고 아시아의 2차 세계대전을 ‘자유의 성전’이라고 주장하는 일본회의와 같은 단체의 홍보물이나 웹사이트에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남부 연합기에 집착하는 미국인들처럼 욱일기 추종자들은 일본의 실패한 전쟁 노력에 대한 영광을 재연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래서 욱일기 사용이 “고통을 당했던 이들과 후손들에게 고의로 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지난달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평화, 반환경 2020도쿄올림픽 대응을 위한 토론회'에서 복도에 전시된 욱일기 관련 포스터 [뉴스1]

지난달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평화, 반환경 2020도쿄올림픽 대응을 위한 토론회'에서 복도에 전시된 욱일기 관련 포스터 [뉴스1]

 더든 교수는 “IOC는 도쿄올림픽에 대한 우려와 보이콧 요구가 중국, 싱가포르, 필리핀, 미얀마로 퍼지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며 “이들 국가에서도 수백만 명이 욱일기의 상징 아래에서 비슷한 폭력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책임론도 더든 교수는 제기했다. “한국과 일본의 전쟁 역사를 ‘그들 간에 해결'하라고 주장해 왔지만, 미국이 1945년 이후 많은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음으로써 분열을 영속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일본은 한국인의 고통을 일축하는 것처럼 연합군 전쟁 포로도 무시한다"며 “소수의 개인적인 사과는 있었지만, 한국ㆍ미국ㆍ중국ㆍ필리핀ㆍ호주ㆍ영국 군인 중 노예가 됐거나 투옥된 이들 중 누구도 배상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가 전시 행위에 대한 공개 논의를 회피하면서 법적 책임 문제만 따져왔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패전일이자 한국의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에서 전범기인 욱일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참배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패전일이자 한국의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에서 전범기인 욱일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참배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더든 교수는 “수많은 일본 학자와 시민이 역사를 부정하려는 일본 정부에 저항해 왔는데, 이들의 노력은 욱일기 아래에서 일어났던 일을 확실하게 설명한다"고 했다. 이어 “잔학행위를 견디고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이들이 적어 도쿄올림픽 경기장을 찾아가 욱일기가 상징하는 것을 설명해주기 어렵다"며 "대신 IOC가 반드시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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