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저물가 일시적"이라는데···KDI는 "원인 심상치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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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뉴스1]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뉴스1]

최근 저물가 추세를 두고 정부와 결이 다른 해석이 나왔다. 디플레이션(deflation·경기 침체와 맞물린 지속적 물가 하락)이 아니란 ‘진단’은 같았지만, ‘원인’에 대한 분석이 엇갈렸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8일 발간한 ‘최근 물가상승률 하락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다.

보고서가 나온 배경은 최근 심상찮은 저물가 추세가 이어지면서다. 통계청이 지난 1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4% 하락했다. 사상 처음 물가상승률이 뒷걸음친 8월(-0.04%)에 이어 두 달째 마이너스다. 196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54년 만에 최저치다.

자료: KDI

자료: KDI

물가는 올해 1~7월 0%대를 기록했다. 그러다 지난 8월 -0.04%로 돌아선 뒤 9월 -0.4%로 하락 폭이 커졌다. 앞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9월 당시에도 8개월 연속 0%대 물가를 기록했다.

KDI는 이런 추세에 대해 “정부의 복지 정책이나 특정 품목이 주도했다기보다 다수 품목에서 물가가 낮아지며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물가 하락이 지속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현 상황을 디플레이션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인 분석에 있어선 정부와 엇갈렸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1일 물가동향 발표 직후 지난해 농·축·수산물 가격 폭등 및 높았던 물가상승률(2.1%)에 따른 ‘기저효과’, 유가 하락, 무상복지 확대 등(공급 측면)을 이유로 들어 저물가를 ‘변호’했다. “물가가 장기간에 걸쳐 지속해서, 광범위하게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은 아니다”라며 “연말에 물가를 회복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KDI는 달랐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 등 수요가 위축하는 점을 우려했다. 보고서에 “일시적 공급 측요인뿐 아니라 수요 측 요인도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썼다. 수요 측 요인을 명시하지 않은 정부와 대비된다.

앞서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 15일 발간한 ‘국내 소비자물가의 특징과 디플레이션 우려에 대한 분석’ 보고서에서 “올해 저물가 상황은 주로 공급 측면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충격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수요 측 물가상승 압력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통계 지표 곳곳에서 저물가 원인을 공급 측면으로만 돌리기 어려운 이유를 찾을 수 있다. 9월 물가동향에선 농·축·수산물이 8.2%, 공업제품이 0.2% 각각 하락했다. 농산물·석유류를 제외한 지수(근원물가지수)는 0.6% 상승하는 데 그쳤다. 근원물가지수는 내수 경기를 가늠하는 ‘경제 체온계’로 불린다. 정부가 강조하는 공급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란 얘기다.

KDI는 최근 저물가 추세가 글로벌 추세와도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서 “주요국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낮아진 물가상승률 추세가 반등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낮은 물가 상승률이) 전 세계적인 저물가 현상을 반영했다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KDI는 대안으로 한국은행의 적극적인 역할(금리 인하)을 제시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 총괄은 “‘금융 안정’을 명시적인 목표로 삼는 현재 통화정책 운용 체계는 물가 상승률 하락을 기준금리 인하로 대처하는 것을 제약할 수 있다”며 “통화 정책을 본연의 책무인 물가 안정 중심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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