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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강아지 팔고 분양비 꿀꺽…‘불량 펫샵’ 단속 사각지대

중앙일보

입력

최은진씨가 작년 11월 입양한 치와와 '멍순이'. 최씨는 강아지가 폐사하자 사비로 장례까지 치렀다. [최은진씨 제공]

최은진씨가 작년 11월 입양한 치와와 '멍순이'. 최씨는 강아지가 폐사하자 사비로 장례까지 치렀다. [최은진씨 제공]

안성재(28)씨는 지난달 2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태어난 지 3개월 된 보스턴테리어를 분양받았다. 게시글에는 강아지 사진과 함께 "현재 아픈 곳 없이 씩씩하게 뛰어다니고 있어요. 이쁘게 키워주신다면야 (책임비는) 다시 돌려드려요"라고 적혀 있었다. 안내해준 장소로 찾아가니 말을 바꿔 분양 비용으로 30만원을 요구했다. 강아지가 마음에 들어 현장에서 비용을 치렀다.

강아지는 6일 만에 폐사했다. 파보바이러스 감염병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애초부터 병에 걸려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어린 생명 눈앞에서 잃어 “자괴감에 우울증까지”   

최은진(34)씨도 같은 업체에서 지난해 11월 10일 생후 2개월 된 치와와를 20만원에 입양했다가 6일 만에 홍역으로 떠나보냈다. 최씨는 “무책임하게 동물을 팔았단 점에서 화가 난다"며 "아직도 ‘멍순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홍석(33)씨는 작년 12월 해당 업체에서 푸들을 들였다가 파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홍씨는 "가정분양이란 말을 믿고 갔는데 자신들이 ‘중개업체’라고 말을 바꾼 것부터 수상했다. 강아지가 죽은 뒤 아내는 자괴감에 경미한 우울증 증상까지 보였다. 돈 때문이 아니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홍석씨가 지난해 12월에 분양받은 푸들. 사흘 만에 파보바이러스 진단을 받고 결국 폐사했다. [홍석씨 제공]

홍석씨가 지난해 12월에 분양받은 푸들. 사흘 만에 파보바이러스 진단을 받고 결국 폐사했다. [홍석씨 제공]

반려동물 줄줄이 폐사해도 펫샵 단속 책임 없어  

동물판매업체에서 아픈 반려동물을 판매해도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어 애견인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해당 업체는 아직 인스타그램을 통해 강아지를 팔고 있다.

현행법상 반려동물 관리 책임이 있는 농림식품부 동물복지정책팀 관계자는 "업체에서 환불을 해줬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판매자가 '영업자 준수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정부에서 행정처분할 수 없다. 판매 애완동물이 여럿 폐사했다고 해도 별도로 조사를 나가는 경우도 없다"고 답했다.

그나마 지자체에서 동물판매업자를 1년에 한 번 정기점검할 의무가 있지만, 단속 메뉴얼에 따르더라도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해당 업체가 위치한 부천시청 동물보호팀 관계자는 "계약서 작성 시 접종 상태에 대해서는 수의사의 확인이 필요하지만, 분양 당시 강아지의 건강 상태를 기록하는 개체카드는 동물판매업체가 직접 작성한다"고 밝혔다. 아픈 강아지를 분양한다는 이유로 민원을 넣어도 지자체에서 단속할 근거도 없다. 실제로 제보자 중 한 명이 작년 말 해당 업체를 부천시청에 신고했지만, 해당 업체는 현재까지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전북대학교 수의대 조호성 교수는 "애완동물 판매업은 사실 생명을 파는 일이다. 그런데 정책적으로는 슈퍼마켓과 비슷하게 취급된다. 견주 입장에서 새로운 개로 바꿔주거나 환불을 해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물판매 사업장 담당 부서를 명확히 하고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후 3개월 강아지에 “약용 샴푸, 음악 치료” 25만원 청구

해당 업체는 계약 약관을 악용해 환불 책임도 피해갔다. 안씨는 환불 문의를 하고 한 달 만에 업체에서 답변을 받았다.“계약서상 분양비는 5만원이고, 나머지 25만원은 강아지를 제공한 용역비라 5만원만 돌려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안씨가 전액 보상을 거절당한 이유는 계약서 때문이다. 안씨의 계약서에는 용역비와 분양비가 별도로 표시돼 있었다. 업체 측은 안씨의 환불 요구에 "동물보호법에서 정한 피해보상의 범위는 해당 동물의 분양대금이며 기타 유·무형의 비용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안씨는 “폐사했을 때 용역비를 돌려받지 못한다는 안내 같은 건 듣지 못했다”며 황당해했다. 최씨 역시 "분양비 4만원만 환불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최씨가 작성한 계약서에는 용역비 16만원, 분양비 4만원이 적혀 있었다.

이들의 계약서 용역 항목엔 “자연 생식급여, 자율급식, 적응케어, 약용샴푸, 이어마이트, 이어클리닝, 패드적응케어, 멸균소독, 프로바이오틱스 급여, 음악 치료, 향수 치료” 등이 적혀 있지만 분양 계약을 맺는 사람은 업체가 동물에 실제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용역 계약서와 분양 계약서에 적힌 연락처도 같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환불금액을 줄이기 위한 꼼수로 보이는데, 이런 계약이 불법이 될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하거나 민사소송으로 가서 '부당약관' 결론을 받아야만 100퍼센트 환불을 받을 수 있다. 소비자가 약관을 따져보고 불리한 계약은 하지 않는 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유령 본사’에 책임 떠넘기기 의혹

중앙일보는 업체 본사와 연락하려 했으나 닿지 않았다. 업체 사이트에 적힌 펫브랜드 사무실을 찾아가 봤지만, 해당 주소에 입주해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객센터에 연락처를 남기고 사무실 위치를 물었으나 “전달하겠다” “방문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란 답변만 받았다.

계약서상에 용역업체로 적힌 연락처로 연락하자 “본사 고객센터에 문의하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제보자들이 강아지를 분양받은 부천시 사업장도 직접 방문했으나 마찬가지로 취재에 응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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