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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박정희가 깬 ‘사농공상’ 문 정권서 부활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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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이념 우위다. 실질은 밀려났다. 거대 담론은 무성하다. 이념 통치의 기세는 거칠다. 과학기술자는 괄시받는다. 기업가 정신은 위축됐다. 직업 외교관은 주눅 들었다. 프로 군인은 구박받는다. 그런 모습들은 문재인 시대의 풍광이다.

10·26 40년, 조선시대 서열로 퇴행 #386 좌파 권력이 ‘사’에 군림해 #과학기술자 괄시, 기업 정신 위축 #실사구시 회복의 반격 기류 형성

문재인 정권은 이념형이다. 권력 한복판은 386 좌파 운동권의 차지다. 정책은 원리주의로 흐른다. 실사구시(實事求是) 풍토는 깨졌다. 청와대의 자세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이다. 그런 독점적 국정 장악은 계속된다.

탈원전은 그런 흐름의 응축이다. 원전 세계의 생태계는 헝클어졌다. 전문가들의 소외감은 깊다. 그들은 “자기파괴형 국익 손실(최희동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이라고 반발한다. ‘문재인 사람들’은 세상을 뒤집는다. 그들은 충격적 변화를 대중에 실감시키려 한다. 그 방식은 최고의 신화를 깨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 업적의 격하다. 국내 원전 기술은 세계 최고다.

4대강 보 해체 논쟁의 기류가 달라졌다. 박석순(환경공학) 이화여대 교수는 “강 유역 주민 여론은 해체 반대가 이제는 대세”라고 했다. 그의 현장보고는 개탄스럽다. “해체 찬성 쪽에 아마추어 시민단체, 좌파 지식인·정치인들이 나섰다. 그들은 어설픈 이념·명분을 앞세운다. 사실과 과학이 푸대접받던 조선조 모습을 연상시켰다.”

조선 시대는 사농공상(士農工商)사회다. 그것은 선비-농민-장인(匠人)-상인의 성리학적 계급이다. 한국사회의 진정한 변혁은 서열 타파로 시작했다. 그것은 박정희 시대의 도전이다. 올해가 10·26(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40주년이다. 그 사연이 떠오른다.

1940년 박정희는 문경 보통학교 교사직을 그만둔다. 그는 만주(현재 중국 동북3성)로 떠났다. 그는 신경군관학교에 들어갔다. 만주국(일본 괴뢰국가)은 5개년 경제개발에 나선다. 만주국과 한국의 산업화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생전에 이렇게 정리했다. “청년기의 만주 경험이 그의 리더십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산업화는 만주국과는 접근법·차원이 크게 다르다.”

JP는 박정희 시대의 기획자였다. 그의 설명은 실감난다. “박 대통령은 사농공상 서열의 폐습을 깨는 것을 혁신의 동력으로 확신했다. 그것으로 우리 국민 속에 잠재된 실용과 근면, 창조와 자립정신을 일깨웠다. 실사구시로 과학기술자를 우대하고, 기업인들이 마음껏 수출전선에서 뛰도록 독려했다. 그런 것들이 모여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뤄냈다.” JP는 “산업화 성취에 만주국의 영향을 강조하는 관점은 ‘박정희의 진실’을 모르거나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실사구시 정신은 퇴조했다. 지금은 사농공상 부활의 분위기다. 386 집권세력은 사(士)의 위치에 군림한다. 그 권력 공간에 진보좌파 인사, 좌파 시민단체·귀족노조 지도부가 진입했다. 그들은 주요 정책을 간섭하고 규정한다. 그것은 조선조 선비의 행태다.

그런 사회는 배타적 코드인사가 성행한다. 그 속에서 대중 선동과 진영 논리가 판친다. 직업 외교관들의 전문 영역은 쭈그러졌다. 프로 군인들은 현장의 안보 전문가다. 그들의 안목과 경험은 중시되지 않는다. 그 속에서 한국 외교는 외톨이 신세다. 한·미 동맹은 헝클어졌다.

문 대통령은 최근 삼성과 현대차를 찾았다. 그것은 친기업 장면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반(反)기업 정서는 거칠다. 노동개혁은 어렵다. 기업 규제는 늘고 있다. 규제는 압박과 간섭이다. 현대판 ‘사’의 권력이다. 기업가 정신은 헝클어졌다. 한국은 기업하기 힘든 나라다.

문 대통령의 22일 국회 연설 핵심은 ‘공정’이다. 하지만 그런 담론의 위세는 꺾였다. 공정의 신뢰도는 추락했다. 그의 경제 해법은 실질의 현장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조국 사태’를 사과하지 않았다. 그 파동은 386 좌파의 위선·이중성을 압축했다. 문재인 정권의 권력 집착은 교묘하다. 공수처 설치는 권한의 집중 카드다. 자유한국당은 “좌파독재 정권의 보위부 설치”라고 비판한다.

다수 한국인은 격동의 세월을 거쳤다. 그런 산전수전은 경륜과 지혜를 낳는다. 그런 경험의 기준에선 원리주의 국정은 한심하다. 그런 미덕은 반격과 자활, 저항과 투지의 기운을 퍼뜨린다. 4대강 보 해체 논란은 반대로 기울었다. 그 반전은 과학기술 전문가의 투혼 덕분이다. 원전 세계의 재기 움직임도 활발하다. 심형진(원자핵공학) 서울대 교수의 원자력 싱크탱크 발족 구상은 다부지다. “원전 전문가들이 국민에게 다가가는 노력이 부족했다. 원전의 안전과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국민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 말은 자성과 재활의 선언이다.

한국 사회는 활력을 잃고 있다. 조선조 분위기로 퇴행하고 있다. 이념형 정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음 달은 문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이다. 보수우파는 조국 사태로 단련됐다. 그들의 정치적 감수성과 대응의 자신감은 확장됐다. 문재인 권력 행태에 대한 반격 기류도 뚜렷하다. 그것은 사농공상의 국정 기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실사구시의 복원을 위한 궐기다. 그것이 제대로 된 나라의 출발점이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