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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차기' 뽑는 KT, 이사 추천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박태희 기자

박태희 기자

KT가 차기 회장 후보 선임 절차를 시작했다. KT는 21일 낸 보도자료를 통해 외부 공모와 전문기관의 추천을 통해 후보군을 뽑겠다고 알렸다.
보도자료만 놓고 보면 후보군 모집은 본인 지원과 헤드헌팅 업체 추천이라는 두 가지 경로가 전부인듯 보이지만 KT의 차기 회장후보 추천 경로는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이사 추천이다. KT 지배구조위원회 운영 규정 제6조 3항은 '사외 회장 후보자군 구성을 위하여 이사의 추천을 받을 수 있고…'라고 적시하고 있다. 현재 KT에는 8명의 사외이사와 3명의 사내이사가 있는데, 이들이 언제든 외부 인사를 회장 후보로 추천할 수 있는 셈이다.

KT 회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통로가 바로 이 ‘이사 추천’이라는 걸 KT 안팎의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물론 이사들은 회사가 처한 현황과 업계 동향 등 경영 상황에 밝아 KT에 꼭 필요한 인물을 찾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사 추천 방식이 운영 규정에 포함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장점에도 KT 안팎에서 이사 추천 경로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추천하는 통로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KT 회장 선임 역사를 돌아보면 이같은 의심은 현실이 된 경우가 많았다. 후보가 2~3배수로 좁혀진 상황에서 사외이사 한 명이 강력히 추천한 사람이 막판 후보대열에 합류하는 상황이 되풀이 됐다. 더 놀라운 건 이렇게 갑자기 합류한 후보가 차기 회장에 선임되는 경우가 잦았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이사 추천은 '드러내놓고 언급하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며, 자칫 부당한 통로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경로'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KT에선 이렇게 이사가 막판 추천한 후보가 차기 회장에 오르고, 그렇게 선임된 회장들이 각종 게이트나 채용 비리 등으로 수사 받는 일이 반복돼 왔다. 이에따라 KT 내부에서는 투명하고 공정하면서 구성원 모두의 지지를 받는 차기 후보를 구성하려면 이사의 추천 내용을 공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어떤 이사가, 어떤 후보를, 어떤 이유로 추천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것이다. 외부 입김 논란을 차단하면서 '국내 최대 종합 통신사업자'를 이끌 적임자를 찾는데 회사와 통신업계를 잘 아는 이사들이 기여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올해는 또 이사들 사이에서는 아예 '오해를 피하기 위해 후보 추천을 하지 말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5G를 선도한 국내 통신 사업자들에겐 통신망에 콘텐트·인공지능·빅데이터를 결합해 플랫폼 사업자로 진화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4차산업혁명도 통신망과 주변기술의 결합을 근간으로 속도를 낼 수 있다. 기간통신사업자인 KT가 이같은 역할을 선도하려면 ICT 시장 변화에 대한 안목, 6만여 KT 직원들의 팔로어십을 이끌어 낼 있는 수장을 뽑아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과정의 투명성'에서 비롯해야 한다.

박태희 산업2팀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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