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 닭모이 쪼듯 복부 찔러 살해"
14일 오후 제주지법 201호 법정.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30)의 5차 공판에서 한 의사가 증언을 시작했다. 고유정이 전남편 살해 직후인 지난 5월 27일과 28일 오른손에 난 상처를 치료받은 정형외과 의사였다. 그는 누군가의 공격으로 (손등에) 상처가 난 것인지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큰 힘(외력)이 들어간 상처는 아녔다”고 말했다.
[사건추적] #고유정, 5차공판도 "우발살해" 주장 #"전남편의 성폭행 막다가 생긴 상처" #붕대 감은 오른손 등 상처놓고 공방
그는 또 “일반적으로 (칼에) 큰 힘이 들어가면 손등의 근육막이나 근육막까지 손상되는데, (고유정은) 손등 지방층의 막까지 보존돼 있어 의아했다”고 말했다. “전남편의 성폭행 시도를 막다가 손 등을 다쳤다”고 말해온 고유정 측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앞서 고유정은 우발적 살해를 강조하기 위해 자신을 치료한 의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부가 해당 사건을 계획범죄가 아닌 우발 범행 쪽으로 판단할 경우 형량이 크게 낮아질 수 있어서다.
아울러 고유정은 검거 직후 자신의 오른손·왼팔·가슴·복부·허벅지·발목 등 6곳 이상을 증거보전신청을 하기도 했다. 증거보전이란 소송 전 재판에서 증거가 없어질 우려가 있을 때 미리 확보해 둘 필요가 있을 때 신청을 하는 제도다.
"성폭행 막다 상처" VS "공격하다 다쳐"
이에 맞서 검찰 측은 경력 30년의 법의학 교수를 증언대에 세웠다. 고유정의 몸에 난 상처가 일부러 자해한 것이거나 시신을 훼손하는 과정에서 다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증인으로 나선 강현욱 제주대 교수는 고유정의 오른손에 난 상처에 대해 “피해자를 칼로 공격하는 과정에서 공격자 자신이 부수적으로 낸 상처라고 봐도 된다”며 “손 바깥쪽(손날)에 난 상처는 공격흔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고유정이 성폭행을 막다가 다쳤다기보다는 오히려 공격하다 다쳤을 가능성을 크게 본 것이다.
이날은 검찰은 강 교수의 증언에 앞서 공개한 고유정의 피의자 신문조서 내용에도 관심이 쏠렸다. 조서에 따르면 고유정은 전남편 살해 직전 “(전남편이) 임신(유산) 얘기가 나오자마자 ‘너 가만있어라. 다시는 임신 못 하게 해주겠다’면서 골반 쪽을 찔렀다”고 진술했다.
또 자신의 몸에 난 상처에 대해서는 “범행 직전에 전남편이 성행위를 요구하면서 흉기로 자신의 배 부위를 칼끝으로 닭모이 쪼듯이 찔러 생긴 상처”라고 주장했다.
30년 법의학자, 방어흔 아닌 ‘공격흔’
검찰은 강 교수에게 “피고인의 복부에 난 상처가 칼끝으로 찔러서 생길 수 있는 상처로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강 교수는 “칼끝으로 찌른 손상이라고 볼 수 없다. 피고인의 몸에 나타난 손상은 긁힌 것이며, 찌르거나 베는 형태가 아니다”라고 했다. 전남편이 흉기로 먼저 위협하면서 복부를 찌른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고유정 측은 이날도 몸에 난 상처가 방어흔이라는 종전 주장을 되풀이했다. 고유정 측 변호인은 이날 “오른손 날에 생긴 3개의 절창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칼을 잡아 빼앗으려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상처일 수 있다”며 “왼쪽 팔목 부위의 상처는 사건 발생 10여일이 지난 뒤에 찍은 사진”이라고 반박했다. 고유정은 전남편 살해 사건과 별개로 현 남편의 아들이자 자신의 의붓아들 A군(5)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유정 6차 공판은 다음 달 4일 열린다.
제주=최경호·최충일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