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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앓으면서 한글교육한 선생님, 손가락 장애 극복한 보일러 명장

중앙일보

입력

14일 서울 강남구 aT센턴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과 개인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은 정진숙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교육부]

14일 서울 강남구 aT센턴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과 개인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은 정진숙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교육부]

“공부하고 싶지만, 배울 곳이 없어요.”

제16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 시상식 열려

정진숙(43)씨는 2005년 휠체어에 탄 장애인의 이같은 호소를 듣고 ‘충주열린학교’를 세웠다. 정씨는 당시 야학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장애인의 배움터 마련이 더 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33㎡(10평) 남짓한 임대아파트를 얻어 간이 교실을 만들고, 책상 대신 상 위에 교과서를 폈다. 정씨는 “교육환경은 열악했지만, 학습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배움터에 대한 입소문은 금세 퍼졌다. 장애인뿐 아니라 배움의 때를 놓친 성인도 찾아 왔다. 학생이 늘면서 두 차례 이사했고, 수업도 한글 외에 검정고시 대비, 컴퓨터 활용 등으로 넓혔다. 설립 초기 3~4명이었던 학생들은 현재 200명 이상으로 늘었다. 2013년 충북에서 최초로 초등학력 인정기관으로 지정받았고, 7년 연속 충북에서 가장 많은 검정고시 합격자를 배출하고 있다.

정씨가 교육 소외계층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상고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했다. 연봉도 많고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2년 만에 그만뒀다.

대학 진학 후 호주 유학을 준비했지만 루푸스를 앓으면서 그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면역체계 이상으로 온몸에 염증이 생겼다. 정씨는 “한때 난치병에 우울증‧폐렴까지 겹쳐 일 년에 몇 번씩 입원을 했다”며 “몸이 아픈 것보다 유학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의에 빠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야학 교사를 구한다’는 신문 광고였다. 교사가 꿈이었던 정씨는 야학 검정고시반 수학교사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학생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27세의 나이로 대학에 들어갔고, 사회복지사·보육교사·요양보호사 자격증, 초등과정 문해교육 교원자격증까지 얻었다. 정씨는 “병세가 나빠지면서 병원 신세를 자주 졌지만, 공부할 때는 아픈 줄 몰랐다. 앞으로도 힘이 닿는 데까지 교육 소외계층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14일 서울 강남구 aT센턴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에서 개인부문 우수상을 받은 성광호씨는 손가락 장애를 극복하고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성광호씨]

14일 서울 강남구 aT센턴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에서 개인부문 우수상을 받은 성광호씨는 손가락 장애를 극복하고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성광호씨]

정씨는 14일 서울 강남 aT센터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 개인부문에서 우수상(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올해로 16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평생학습 확산에 기여한 단체와 개인에게 주는 상이다. 교육부가 주최하고 국가평생교육진흥원·중앙일보가 공동 후원한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은 바로 배움 뿐”이라며 “학교 교육을 넘어 새로운 인생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개인 부문의 또 다른 우수상 수상자는 장애를 극복하고 대한민국 보일러 명장이 된 성광호(68·대전 중구)씨다. 그는 3살 때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고, 중2 때 아버지, 21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 하지만 배움의 끈을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반고 졸업 후 성인이 된 이후에야 보일러 기술을 익혔는데, 보일러 시공기능사 외에 열관리 기능사·환경관리기사 등 기술자격증을 취득했다. 평생학습을 통해 2002년 명장의 자리에 올랐고, 2008년 보일러 분야 최초로 기능한국인에 선정됐다.

성씨는 “기회는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같다”며 “불우한 환경을 비관하지 않고 항상 공부한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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