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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in&Out레저] 은은한 연꽃향 … 속세의 때 가시는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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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련

'진흙 속에서 나왔어도 때 묻지 아니하고, 맑은 물에 씻기었어도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어있는데 겉모습은 곧게 자란다. … 멀리서 바라보아도 좋고 가까이 다가가도 감히 희롱할 수가 없다' 중국 북송시대의 유학자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說)이라는 시에서 연꽃을 이같이 예찬한다. 그는 연꽃을 '꽃 중의 군자(君子)'라 불렀다. 물 한가운데 피어 있는 연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은 범인(凡人)의 눈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연꽃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곳이 21일 수도권에 문을 연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강가에 자리잡은 세미원(洗美苑). 이곳은 연꽃 봉오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세미원(양평) 글=성시윤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연 50종, 수련 120종 → 연차 마시며 풍류도 느끼고

안으로 들어가자니 세미원 측에서 고무신을 내주며 갈아 신으라 당부한다. 연꽃단지 안 식물을 보호하자는 취지란다. 밑창이 딱딱한 신발을 신으면 산책로 지반이 주저앉을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세미원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살을 섞는 두물머리 부근 1만9000평 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연꽃 가득한 대형 연못만 여섯 개. 남한강의 물을 끌어들여 만들었다. 연못에 피어 있는 백련.홍련은 꽃봉오리가 수박만큼이나 크고 탐스럽다. 하지만 꽃잎은 연약해 강바람에 쉼 없이 하늘거린다. 물 위로 솟은 연잎마다에는 작게 고인 빗물이 보석처럼 영롱하다.

일반 연과 달리 수련은 잎이 수면에 붙어 있다. 흔히 수련의 '수'자를 물 수(水)로 오해하는데 사실은 졸음 수(睡)자다. 수련은 오후 2~4시 정도가 되면 꽃잎을 오므리고 깊은 잠에 빠져 든다.

연꽃은 일제히 피었다 지지 않는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번갈아가며 꽃대가 올라온다. 생명력도 강하다. 세미원 연꽃밭만 해도 수해로 물에 잠겼으나, 이에 아랑곳 없이 새로운 꽃대가 계속 솟아나고 있다. 세미원에는 연 50종, 수련 120종이 산다. 10월 초순까지는 야외에서, 이후에는 온실에서 연꽃을 볼 수 있다.

세미원이란 이름은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觀水洗心 觀花美心)'. 이런 철학은 세미원 곳곳에 스며 있다. 그중 하나가 관람로. 맨바닥과 얕은 물 위에 보도블록 혹은 징검다리돌 삼아 빨래판을 깔았다. 마음을 닦자는 뜻이다. 연꽃밭 주변에는 시등(詩燈) 80여 개가 서 있다. 등갓에는 한국의 옛시들이 적혀 있다. 매주 금.토.일요일 밤마다 여기 불을 밝힌다. 옛 문화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장치나 시설을 복원해 놓은 것에도 눈길이 간다. 굽이굽이 물길에 찻잔을 띄워 풍류를 즐기는 유상곡수(流觴曲水), 청계천에 놓여 있던 수표(水標.청계천 수위를 재던 돌기둥) 등을 복원해 꾸민 분수대, 창경궁에서 바람의 방향을 살피던 풍기대(風旗臺) 등. 세미원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글을 가져온 이에게는 유상곡수에서 연엽차(蓮葉茶)를 무료 제공하는 것도 검토 중이란다.

연과 수련은 잎으로 구분한다. 잎이 물 수면 위로 떠 있으면 연, 물 수면과 붙어 있으면 수련이다. 사진은 홍련 연못.


세미원에서 강 건너편, 그러니까 두물머리 입구에 있는 '석창원'(石菖園.양서면 양수리)도 재미있다. 세미원에서 관리하는 별도 전시 공간이다. 식물과 관련 있는 왕실 및 양반가의 풍류를 만날 수 있다. 그중 압권은 수레형 정자인 사륜정(四輪亭). 고려 때 문인인 이규보가 설계만 해 놓고 정작 만들지 못한 것을 문헌에 따라 복원해 놓았다 한다. 정조 때 창덕궁 안에 있던 온실, 세종 때 강화도에 설치했던 온실도 재현해 놓았다.

양평의 꿈 → "연으로 먹고 살 것"

세미원이 자리 잡은 곳은 상수원보호구역이자 그린벨트로 땅 주인은 건설교통부다. 세미원이 생기기 전 이곳은 잡초가 우거져 있었고 일부만 밭으로 활용됐다. 이곳에 연을 재배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사단법인 '우리문화가꾸기회'라는 시민단체였다. 1973년 활동을 시작했으며 회원은 300여 명. 서영훈 전 적십자 총재가 이사장이다. 저소득층 어린이에게 음악.미술.문학 등을 가르치는 교육 사업을 주로 해왔다. 이들의 제안에 경기도가 예산 지원을 했고, 양평군은 행정 지원, 환경부는 기술적 도움을 줬다. 운영 주체 역시 우리문화가꾸기회다.

세미원은 단순히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연잎.연씨.연근 등을 이용한 식품.음료 등을 개발해 양평군이 연으로 먹고 사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 주요 설립 목적 중 하나다. 그런 만큼 연 재배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는 것이 세미원의 과제다. 세미원은 우선 왕실에 전해 내려오던 내국감홍로(內局甘紅露)라는 전통술을 복원해냈다. 연씨를 재료로 써 은솥에 소주를 내린 뒤 여기 여러 약재와 꿀을 섞어 만든 술이다. 세미원에선 올 연말까지 연 관련 식품 개발을 마치고, 내년부터는 양평 농가에 연씨를 무상 제공할 계획이다. 연 재배를 함으로써 수질을 정화하고 소득원도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 여행정보

■위치 및 연락처=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 632 양서문화체육공원 내. 031- 775-1834. www.semiwon.or.kr

■교통편=서울에서 양평 방향 6번 국도→신양수대교 건너자마자 오른쪽 진출 램프→양수리 방향 500m

■관람 정보=방문 전 예약을 해놓아야 세미원에 들어갈 수 있다. 하루 500명으로 입장객이 제한돼 있다. 평일은 오전 10시~오후 6시 개방하며 매주 금.토.일요일에는 오후 10시에 문을 닫는다. 아직 입장료를 정하지 못해 당분간 무료로 개방한다. 입장료를 받기 시작하면 입장료에 상응하는 쌀을 준다 한다. 양평에서 재배한 쌀이다. 세미원 내부에는 음식물과 카메라용 삼각대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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