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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폐기+α' 노리는 美, 北에 일시적 제재완화 카드 내밀까

중앙일보

입력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일(현지시간) 저녁 워싱턴 한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국경절 행사에서 축사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한민족의 영구적 평화와 한반도의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위대한 외교적 계획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정효식 특파원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일(현지시간) 저녁 워싱턴 한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국경절 행사에서 축사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한민족의 영구적 평화와 한반도의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위대한 외교적 계획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정효식 특파원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4~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발언을 삼갔다. 그는 2일 저녁(현지시간) 워싱턴의 주미 한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국경절(개천절) 행사에서 축사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다시 일하러 돌아가야 한다"고만 답한 채 급히 떠났다.

한국 국경절에 축사한 비건 "일하러 가야해" #비밀 우라늄 농축포함 핵·미사일 동결 목표, #국제 사찰단 복귀, 강력한 검증 합의도 난제 #"UN 석탄·섬유 제재 36개월 유예" 보도 논란

미 국무부 관계자도 이날 비건 대표가 북측에 제재 완화를 포함해 새로운 제안을 할지를 묻는 중앙일보 질문에 "비공개 외교적 대화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북·미 실무협상과 관련, 외교 소식통은 "비건 대표는 지난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북한 체제 보장 방안을 포함해 많은 논의를 했지만 새로운 카드를 내놓기 전에 먼저 북한 측 카운터파트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의 이야기부터 들어 보겠다고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북한이 어떤 체제 보장과 제재 완화를 요구할지, 그 대가로 어떤 규모의 1단계 비핵화 조치를 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7개월 만에 열리는 이번 북·미 실무협상에서 미국의 일차적 목표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15개월여 교착상태에서도 북한은 이번 북극성-3형와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KN-25(초대구경 방사포) 등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의 종류와 수량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 차관보는 이날 통화에서 "미국이 추구할 중간 합의는 영변 핵시설 폐기 만으로 부족하고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한다"며 "강선을 포함한 북한 전역의 우라늄 농축 관련 시설은 물론 탄도미사일 시험 중단까지 포함해야 실질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의 요구 목록엔 핵·미사일 프로그램 동결 외에 검증도 우선 순위에 올라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부터 "강력한 검증(robust verification)"을 우선 목표로 했다. 이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개념까지 만들었다. 어떤 합의든 국제 사찰단 복귀가 필수라는 뜻이다.
켄 고스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북한에 영변 재처리 중단까지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면서 "이번 협상의 가장 큰 난제가 엄격한 검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떠난 이후엔 해체한 시설을 재건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해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현재 가장 시급한 부분적 제재 완화 카드를 협상테이블에 내놓을지 또한 변수다. 이와 관련 인터넷 매체 복스는 이날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영변 단지와 우라늄 농축시설의 검증 가능한 폐쇄 대가로 유엔 석탄·섬유 제재의 36개월 유예를 제안할 계획"이라고 보도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수개월 전부터 이와 비슷한 방안이 계속 거론되고 있는 데 협상팀 주변에서는 곧바로 "완전히 오보"라고 부인하는 반응이 나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뉴욕 정상회담에서 "대북 제재를 줄이긴커녕 늘렸다"며 제재 유지 입장을 재확인한 것과도 정면으로 어긋난다.

하지만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미국 입장에선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제재 완화를 해주는 대가로 북한의 비밀 농축 시설의 신고와 사찰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실행 가능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며 "2016년 이후 가해진 유엔 제재를 모두 해제하라고 요구했던 북한이 이를 수용할지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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