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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검은 여왕' 전설의 소프라노 제시 노먼 별세

중앙일보

입력

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오페라 가수 제시 노먼. [중앙포토]

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오페라 가수 제시 노먼. [중앙포토]

"성공하기 위해서는 야망과 재능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과 소명입니다."

가난한 무명 음악가 부모 밑에서 태어나 #ARD 음악콩쿠르 우승 계기로 세계적 발돋움 #케네디센터 명예상, 그래미 평생공로상 등 수상

유럽과 백인 중심이었던 음악계에서 가난과 싸우고 인종 차별을 이겨내며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된 미국의 흑인 오페라 가수 제시 노먼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74세.

유족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노먼이 이날 오전 7시 54분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뉴욕 마운트 시나이 세인트 루크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사인은 2015년부터 앓아온 척수손상에 따른 합병증인 패혈성 쇼크와 다기관 기능 부전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제시의 음악적 성과와 전 세계 청중에게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영감을 줬다는 데 대해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기아, 노숙자, 청소년 발달, 예술·문화 교육 등의 문제에서 그의 인도주의적 노력도 마찬가지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먼은 인종분리정책이 있던 1945년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아마추어 음악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9세 때 생일선물로 받은 라디오를 통해 오페라에 눈을 뜬 노먼은 워싱턴DC에 있는 흑인 대학인 하워드대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으며, 이후 피바디 음악학교와 미시건대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생전 제시 노먼의 모습. [중앙포토]

생전 제시 노먼의 모습. [중앙포토]

이후 유럽으로 건너간 노먼은 1969년 독일에서 열린 ARD 국제 음악콩쿠르 우승을 계기로 세계적인 가수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데뷔 공연 무대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의 엘리자베트 역으로 호평받으며 일약 스타가 됐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노먼의 목소리를 "소리의 장려한 대저택"이라고 표현했다. '오페라의 검은 여왕' '여자 파바로티' 등의 수식어가 그를 따라붙었다. 노먼은 이후 이탈리아 라스칼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 등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에 서며 '카르멘' '아이다' 등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1997년 노먼은 52세의 나이로 최연소 케네디센터 명예상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예술훈장을 받았다. 또 15차례 그래미상 후보로 올라 4차례 수상했다. 2006년에는 클래식 음악가로는 4번째로 그래미상 클래식 부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노먼에게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준 프랑스에는 노먼의 이름을 딴 난초도 있다.

노먼은 고향인 오거스타에 '제시 노먼 예술학교'를 세우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무료로 방과 후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에도 앞장섰다.

그는 2001년, 2002년, 2009년 방한해 국내 관객들과도 만났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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