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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이재의 이코노믹스

BTS 일으켜세운 건 커넥토그래피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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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플랫폼 경제가 이끄는 4차 산업혁명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는? 1위 중국(14억3700만명), 2위 인도(13억6600만명)로 답한다면 당신은 구시대의 국경과 영토에 갇힌 ‘지리의 죄수(prisoner of geography)’일 수 있다. 신시대의 디지털 인구 기준으로는 세상이 달라진다. 2012년 인스타그램(10억명)을 인수한 페이스북(23억 8000만명)은 33억명의 인구를 보유한 압도적 ‘1위 국’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유튜브도 20억 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큐존(5억7200만명), 틱톡(5억 명), 시나 웨이보(4억6500만명)는 중국을 기반으로 성장한 플랫폼 기업으로 미국(3억2900만명)보다 더 많은 인구를 보유한 대국이다. 세계 4위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2억7100만명)조차 인스타그램·레딧·트위터·도우반·링크드인·스냅챗 등 신흥 기업에 밀린다. 커넥토그래피 혁명은 영토와 국민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상식을 바꾸고 있다.

플랫폼 혁명이 세계 경제지도 바꿔 #인터넷·통신망 초국적 연결이 주도 #경쟁력 있는 연결성이 혁신 이끌고 #‘지리적 상상력’은 기업 운명 갈라놔

‘커넥토그래피(Connectography)’란 연결(Connect)과 지리(Geography)를 합성한 신조어다. 『커넥토그래피 혁명』을 쓴 파라그 카나는 미국지리학회 회원으로 미국국가정보위원회에 조언하는 국제관계 전문가다. 그는 21세기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지리는 운명이다”로는 부족하고 “연결이 운명이다”라고 주장한다. 21세기는 고속도로·철도·파이프라인 등 에너지와 물품·인재 수송로, 정보·지식과 금융·기술이 광속도로 흘러가는 인터넷·통신망 등 기능적 사회기반시설의 초국적 연결이 중요해졌다. 지리적 환경이 국가와 민족의 흥망, 문명과 역사를 결정했다면 이제는 연결성이 관건이다.

평면적 사고로는 기회 포착 불가능

매켄지 글로벌연구소의 연결지수에 따르면 상품·서비스·금융·사람·데이터 분야의 모든 흐름을 수용하고 전달하는 중심국가로 싱가포르(1위)·네덜란드(2위)·미국(3위)이 꼽힌다. 전체 16위를 차지한 한국은 상품(8위)·서비스(12위) 분야에서는 앞서 있지만, 금융(28위)·데이터(44위)·사람(50위) 분야의 연결성은 낮다. 기술 강국인 중국(7위) 역시 전체 순위는 높지만 다양한 이민자를 받아들이거나 국경을 넘는 여행을 통해 사람의 연결성을 확장하는 능력(82위)은 부족하다. 반면 메카 성지 순례가 연중 계속되고 이민자를 적극 수용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사람의 연결성 지수 2위 국가다. 반면 서울은 최상위 글로벌 중심지로 뉴욕·런던·홍콩·도쿄·싱가포르·두바이보다 글로벌 연계성이 많이 떨어진다.

플랫폼 경제(Platform Economy)는 융·복합을 핵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여러 산업에 걸쳐 꼭 필요한 빅데이터·AI 등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고 생태계를 조성하며 성장한다. 수많은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기차역 플랫폼처럼 외부와 연결성이 높을수록 확장에 유리하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게임판을 만든 혁신 기업들, 즉 페이스북·아마존·애플·구글 등 시가 총액 5위권 대기업부터 우버·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의 스타 기업들까지 모두 플랫폼을 적극 활용한다. 최근 삼성을 제치고 시가총액 10위권에 진입한 텐센트(7위)·알리바바(8위) 등 중국 기업도 모두 플랫폼에 기반해 빠르게 성장한 기업들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플랫폼 경쟁력은 우려스럽다. 글로벌 플랫폼 전쟁터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 네이버가 개발한 라인은 아시아에서 부상한 최초의 대형 메시지 플랫폼이었지만 미국에서 시작된 왓츠앱, 중국의 위챗에 빠르게 추월당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내 시장 중심으로 서비스를 개발하다 보니 공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과 경쟁하기 버거워졌다.

4차 산업혁명, 플랫폼 혁명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될수록 커넥토그래피가 운명을 좌우한다. 글로벌 플랫폼을 확보해 ‘경쟁력 있는 연결성’을 유지해야 대기업도 생존이 가능한 시대다. 구글·아마존 등 잘 나가는 기업들은 공간정보와 연계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물류비를 절약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지리학자와 지리정보시스템(GIS) 전문가를 우대한다. 기업뿐 아니라 개인과 도시, 국가도 상생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를 잘 찾고 틈새를 찾는 지리적 상상력이 필수다. 이건희 전 회장의 멘토로 삼성전자의 개혁을 이끌었던 요시카와 료조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를 설명하며 “이제 마케팅은 선진국에서 제 3세계로, 틀에 박힌 분석 보고서에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지정학적 제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미 포화상태인 서구 선진국의 안락한 공간에서 벗어나 불편하고 낯선 오지를 계속 탐험해야 하는 이유다.

원천기술과 함께 플랫폼 확장해야

언제나 혁명은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일어났다. 첨단 기술이 단기간에 사회 전반에 침투하여 급속하게 생활을 바꾸는 현상을 ‘립 프로그(leapfrog) 성장’이라 하는데, 자기 키를 훌쩍 넘어 크게 점프하는 개구리는 결핍된 환경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낙후된 경제, 불편한 환경이 정보기술혁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동력이 됐다. 2000년대 집에 전화가 없는 사람이 많으니 휴대폰에 열광하고, 농촌에 상점이 부족하니 전자상거래가 발달한다. 은행 통장이 없는 가난한 계층이 두터운 아프리카·남미 등 제 3세계에서 핀테크 등 금융과 결합한 디지털 경제가 급성장한다.

이제 골방에 갇혀 암기에 집중해 시험만 잘 보는 편협한 모범생의 시대는 저물어 간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고립되면 쇠퇴하고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존하고 번영하려면 신기술 개발과 코딩교육만이 능사가 아니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널리 확산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연결과 융합’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의적 인재의 지리적 상상력은 학교와 공장·오피스에 갇혀 있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은 아름다운 휴양지의 카페, 꽉 막히는 도로의 차 안, 누군가의 스마트폰에서 소리 없이 진행 중이다.

커넥토그래피 혁명을 실천한 BTS의 성공 방정식

4억 뷰를 넘은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유튜브.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4억 뷰를 넘은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유튜브.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2012년 12월 17일 유튜브 채널이 개설되고 영상이 올려지며 방탄소년단(BTS)의 신화가 시작됐다. 주요 방송국 무대에 설 기회를 잡기 어려웠던 무명의 신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이제는 비틀스를 뛰어넘는 전설적 그룹으로 성장한 BTS는 콘텐츠-네트워크-플랫폼-디바이스가 결합된 완벽한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했다. 열정적이며 결속력 강한 팬클럽, 아미(ARMY)는 BTS 제국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디지털 원어민’으로 불리는 10대 초·중반의 소년· 소녀 중심인 아미와 BTS는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활발하게 소통한다. 유튜브에 개설된 방탄 채널을 통해서 BTS는 공식 공연뿐 아니라 안무 연습 장면, 백 스테이지 영상 등을 실시간으로 계속 올려 글로벌 팬들에게 서비스한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매일 수많은 사진을 올리고 페이스북에 소소한 일상을 포스팅하며 BTS 제국을 꾸준히 확장하는 전략이다.

특히 전파 속도가 빠른 트위터는 BTS 제국의 강력한 무기다. BTS를 위한 온라인 투표를 장려하는 해시태그는 순식간에 51억7200만 트윗을 만들어내 기네스 세계 신기록에 올랐다. 세계 인구의 70%에 달하는 트윗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2018년 기준으로 아미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필리핀이고 한국은 2위, 미국은 8위다. 3위에서 6위까지는 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가 차지했고, 브라질(7위)·대만(9위)·멕시코(10위)가 뒤를 이었다. BTS의 성공 방정식은 커넥토그래피 혁명의 시대, 한국 정부와 기업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준다.

◆김이재

경인교대 지리학과 교수 겸 지리적 상상력연구소장. 세계 100여 국을 돌아 동남아 지역전문가가 됐다. ‘동남아 4차 산업혁명과 한국 기업의 진출 기회 모색’ 등 동남아 논문이 여럿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