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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배우가 꿈인 어떤 킬러의 이야기, 배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배리   [사진 IMDb]

배리 [사진 IMDb]

리뷰를 쓴다 쓴다 하고 시간을 끌다 보니 빌 헤이더가 제71회 에미상 코미디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축하할 일이다.

빌 헤이더는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겠다는, 흔해빠졌지만 매우 확률 낮은 꿈을 갖고 오클라호마에서 할리우드로 왔다. 어찌 어찌 하다가 코믹 연기자가 됐고, SNL(Saturday Night Live)에 출연하면서 인생 경로가 바뀌었다. 뭐 아직 결과를 말하긴 좀 이르지만 현재까진 대단히 좋은 선택이었던 셈이다. 처음에는 알 파치노와 피터 포크(나이 좀 드신 분들은 ‘형사 콜롬보’라고 하면 바로 아시는 배우)의 성대모사로 뜨기 시작했고, 전설적인 코믹 배우 댄 애크로이드(<고스트 버스터즈>를 비롯해 수많은 주옥 같은 작품을 남긴)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극찬했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자기와 너무 닮은 신인이 나온 데 감동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신기하게 닮았다.

어쩐지 정이 가는 주인공 

너무 닮은 두 배우, 빌 헤이더(왼쪽)와 댄 애크로이드. [사진 구글]

너무 닮은 두 배우, 빌 헤이더(왼쪽)와 댄 애크로이드. [사진 구글]

빌 헤이더는 HBO 드라마 ‘배리 Barry(2018)’에서 어쩐지 정이 가는 살인청부업자 배리 역을 맡았다. 특수부대 출신인 배리는 사람을 죽이는 기술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겉으론 사회성이 좀 부족해 보이는 평범한 청년이다. 일종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걸로 보아선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어찌 보면 <덱스터>의 패러디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배리는 매니저(살인 일감을 물어다 주는 사람) 역할을 하는 푹스와 단 둘이 일을 하는데,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푹스로부터 제대로 몫을 다 챙겨받았을 리는 만무한 상황. 그런 배리가 우연히 어떤 청부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할리우드의 연기학원에 발을 들여 놓게 되고, 그로 인해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배우로 무대에 서는 것이야말로 진정 자신이 지금까지 가고 싶었던 길이라는 걸 깨달은 거다.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

HBO 드라마 &lt;배리&gt;의 한 장면.  [사진 IMDb]

HBO 드라마 <배리>의 한 장면. [사진 IMDb]

쇼 비즈니스에 열정을 가진 범죄자 이야기는 지난 90년대 영화로 두 차례 성공한 적이 있다. 하나는 우디 앨런의 1994년작 <브로드웨이를 쏴라(Bullet over Broadway)>였다. 대외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소심한 극작가 역의 존 쿠색이었지만 실제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채즈 팔민테리가 연기한 갱단 부두목 치치 역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존 트래볼타 주연의 1995년작 <겟 쇼티(Get Shorty)>. 여기서도 노련한 갱스터 존 트래볼타는 우연히 문제 해결을 위해 할리우드에 갔다가 자신의 평소 꿈을 실현시킬 기회를 맞고 커리어 전환을 시도한다. 시대는 다르지만 두 작품의 구조는 매우 닮아 있다.

물론 결정적인 차이도 있다. 두 작품의 영리한 갱스터들이 각가 브로드웨이 쇼와 영화의 프로듀서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능력(즉 폭력)을 매우 잘 활용하는 반면, 배리는 살인이라는 자신의 특기를 써 먹을데가 없다. 사람 죽이는 능력과 좋은 연기자가 되는 법 사이에는 당최 접접이 없다.

HBO 드라마 &lt;배리&gt;의 한 장면.  [사진 IMDb]

HBO 드라마 <배리>의 한 장면. [사진 IMDb]

사실 배리가 연기학원에 목을 매는 데에는 연기에 대한 열정 외에, 동료 연기자 지망생인 샐리(사라 골드버그)와의 로맨스도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샐리에게 있어 배리는 그 정도로 의미있는 존재가 아니다. 연기자로 성공하겠다는 꿈에 비하면 배리와의 로맨스는 당장이라도 정리할 수 있는, 그런 정도다.

꼬이기만 하는 인생, 언제쯤 풀릴까

이런 구도는 시청자로 하여금 묘하게 배리를 미워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덱스터>의 덱스터가 법이 처리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을 청소한다는 사회적 순기능 덕분에 정당성을 확보한다면, 배리에겐 그런 방어막이 없다.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갱단 단원들을 많이 해치우게 되지만, 거기에 정의 수호의 의지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리는 이 드라마 속에서 더러운 과거를 딛고 연기자가 되고 싶은 남자, 그닥 보상받지 못하는 짝사랑에 매달리는 남자일 뿐이다. 샐리가 시청자에게 호감을 사지 못하는 만큼 배리가 용서받는 독특한 구조다.

HBO 드라마 &lt;배리&gt;의 한 장면. [사진 IMDb]

HBO 드라마 <배리>의 한 장면. [사진 IMDb]

‘배리’에는 거창한 범죄 심리 분석도, 정의에 대한 철학적 성찰도 없다. 그저 뭘 하면 할수록 인생이 꼬여 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와는 무관하게 주위에 있는 악의 무리들을 처단하게 되는(결코 ‘처단하는’이 아님) 한 남자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배리의 운명을 궁금해 한다. 그게 궁금해서라도 이 드라마 시청을 멈출 수가 없다.

글 by 송군. 10년차 방송인, <보난자>로 미드 입문


제목  배리(BARRY)
제작  알렉 버그, 빌 헤이더
출연  빌 헤이더, 스테판 루츠, 사라 골드버그
시즌  1(2018), 2(2019)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평점  IMDb 8.3 에디터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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