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추상과 육감의 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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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40기KT배왕위전'

<도전 5번기 제1국>
○ . 왕위 이창호 9단 ● . 도전자 이영구 5단

제2보(20~32)=백△와 흑▲의 교환으로 난해한 공중전이 시작됐다. 이창호 9단이 전보에서 백△로 천원을 둔 것은 지금의 대모양 바둑에서 이곳이야말로 세력의 중심점이기 때문이다. 흑▲는 백이 사각형으로 진영을 입체화하는 것을 가로막은 수.

이제부터 어렵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연상케 하는 이 바둑은 진짜 추상 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김영삼 7단이 이창호 9단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바둑돌 대여섯 개 놓인 상태인데 몇 집이냐고 묻잖아요."

그렇다. 이 9단은 어려서부터 추상적 공간을 구체적 수치로 환산해 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다. 서봉수 9단은 오죽하면 "중앙을 계산할 능력이 있는 기사는 오직 이창호 한 사람뿐"이라고 단정을 내리기도 했다. 현대의 전투적 바둑에 익숙한 이영구 5단도 끝내기 계산 능력은 매우 탁월하다. 그러나 허허벌판에 대한 계산은 해본 적이 없다. 좌하 백집은 근 50집의 확정가가 되었지만 우상으로 빙 돌아간 흑집은 계산이 안 된다. 이영구는 31까지의 결과에 대해 국후 이렇게 말했다.

"육감으로 두었지만 흑이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이영구로서는 오직 육감을 믿어야 한다. 그만큼 상황은 어렵고 정답을 자신할 수 없다. 31에서 이 9단이 장고에 빠져든다. 검토실에선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다. 그중에서 가장 유력하게 제시된 그림이 '참고도' 백1. 흑이 2로 큰 집을 지으며 쫓아오면 백3으로 반격하며 전투로 돌입한다.

그러나 이창호의 선택은 32다. 참 느릿하다. 아무 노림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던 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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