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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피의사실 공표 제재 시기 미뤘지만, 알권리 제한 논란 그대로

중앙일보

입력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 참석한 조국 법무부 장관은 모두발언 중 검찰 수사를 받는 가족 얘기를 꺼냈다. 이날 회의 안건 중 하나였던 법무부의 ‘형사사건 수사 공보 개선 방안’을 언급하면서다.

“일부에서는 제 가족 때문으로 오해하고 있다. 저와 무관하게 이미 추진해 온 법무부 정책을 이어받아 마무리하는 것이다. 오늘 논의되는 형사사건 수사공보 개선 방안은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치고, 제 가족 사건이 마무리된 후에 시행되도록 할 것이다.”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박상기 전 장관 시절 법무부가 마련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안)’ 초안에는 ▶기소 전 피의자 소환 촬영 제한 ▶소환 일정 공개 제한 ▶국회의원·고위공직자 등 수사대상 공인(公人) 실명 공개 금지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설치 ▶수사내용 유포 시 장관 감찰권 발동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를 두고 야당 등에서는 “조 장관이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이 보도되는 것을 막으려는 ‘셀프 방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이와 관련,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일부에서 마치 검찰이 특정 수사 대상에 적용하기 위해 지침을 개정하는 거 아니냐는 억측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검찰이 수사 중인 장관 가족 관련 사건이 종결된 후부터 (형사사건 수사 공보 개선 방안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되, 관계기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시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을 논의하는 당정협의회가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조국 법무부 장관이 대화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을 논의하는 당정협의회가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조국 법무부 장관이 대화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시행 시점 논란을 넘어 법무부의 공보준칙 개정안에 대해 “헌법상 국민 알 권리를 침해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 상황에 대한 외부공개 원칙을 어길 경우, 감찰을 의무화한 규정이 존재하는 탓에 검찰의 공보 기능이 사실상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여권에서는 “피의자 입장에서는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는데, 수사 내용이 알려지면 그 원칙이 제대로 보장되겠느냐”고 반박한다.

전문가들은 “이 기회에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보다 세부적인 수사 공보 기준을 명확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법에서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는 이유는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때문이 아니라, 수사와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 때문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피의사실 공표 전면 금지보다는 수사 대상과 수사 단계별 시기에 따라 공보 기준을 세분화 해 법제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이 수사 내용을 브리핑할 때도 피의자의 반론을 충분히 설명해야 균형이 잡힌다”고 덧붙였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에게 미치는 악영향 우려를 잘 절충하면 되는데, 현실적으로 수사기관이 이를 여론 조성을 통한 피의자 압박용으로 악용하는 것이 문제”라며 “공론화를 통해 이런 점이 해결된다면,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의 경우 소환 단계에서부터라도 국민이 수사 진척상황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여권이) 여태까지 진행된 검찰 수사에는 피의사실 공표가 돼도 박수를 치다가, 이제 와서 이를 들고나오니 국민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도 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검찰의 수사 관행과 언론의 취재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해결이 난망한 주제”라며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공소제기 전 단계에서부터 공개 브리핑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법에 의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을 논의하는 당정협의가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법무부 장관, 이인영 원내대표(앞줄 왼쪽부터)가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을 논의하는 당정협의가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법무부 장관, 이인영 원내대표(앞줄 왼쪽부터)가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임차인 보호 상가에서 주택까지 확대”=한편 당·정은 현재 국회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돼 법사위에 계류 중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을 올해 말까지 처리하기로 했다. 검찰의 형사·공판부 인력을 확충 및 우대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형사·공판부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이 밖에 ▶북한이탈주민 등 취약계층을 위한 후견변호인 제도 ▶현재 피고인에게 제공되는 국선변호인 제도를 수사 중인 피의자에게까지 확대하는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집단소송제 도입 분야의 제한을 없애 확대 도입하는 방안 등도 추진한다.

당·정은 또 임대차 법제 개선을 위한 개정 입법에도 뜻을 모았다. 상가임차인에게만 인정되던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을 주택임차인에게도 보장하고, 임대차 분쟁 조정 신청 시 피신청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조정 절차가 개시되도록 법제를 정비한다는 내용이다. 주택임차인의 주거를 현행 2년보다 장기간 보장하는 방안, 계약갱신 거절 통지 기간을 현행 5개월(계약 종료 6개월 전~1개월 전)에서 4개월(계약 종료 6개월 전~2개월 전)로 단축해 임대차 계약 종료에 따른 당사자의 후속 준비 기간을 충분히 보장하는 방안 등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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