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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워드' 지라시까지 돌자…김현종, 강경화와 영어싸움 급휴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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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연합뉴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18일 트위터에 “외교안보 라인 간의 이견에 대한 우려들이 있는데, 제 덕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적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영어 싸움’ 여파가 커지자 급히 진화에 나선 모습이다.
강 장관이 지난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김 차장과 영어까지 쓰며 싸우지 않았느냐"는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강 장관과 김 차장 간 불화설은 급속히 퍼졌다. 두 사람의 갈등을 넘어 정부 외교·안보 진용 내 엇박자가 심각하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강 장관 '작심 시인' 뒤 갈등설 일파만파  

사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을 수행 중이던 강 장관과 김 차장이 설전을 벌였다는 이야기는 이미 몇달 전부터 외교부 안팎에서 정설로 퍼져 있었다. 하지만 강 장관이 이를 공개적으로 시인하면서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됐다. 강 장관의 ‘작심 시인’은 독특한 김 차장의 업무 스타일에 대해 우려하는 외교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외교가에선 ‘김현종 깔때기론’을 이야기하는 인사들이 많다. 배경이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이례적인 결정이나 발표가 있을 때마다 김 차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추측으로 이어졌다. 특히 지난 7월 김 차장이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청와대가 아닌 외교부 청사에서 만났을 때 석연치 않다는 평가가 많이 나왔다. 여름 개각에서 강 장관이 교체될 것이란 여러 소문과 맞물리면서다. 김 차장은 예전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썼던 9층 집무실에서 스틸웰 차관보를 만났다고 한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달 청와대에서 한-에티오피아 정상회담 전 통화하고 있다. 그 앞은 강경화 외교장관. [연합뉴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달 청와대에서 한-에티오피아 정상회담 전 통화하고 있다. 그 앞은 강경화 외교장관. [연합뉴스]

김 차장 업무 스타일, 이례적 상황 연출

모든 현안의 세부적 사항까지 직접 꼼꼼히 챙기는 김 차장의 업무 스타일도 통상 보기 힘든 풍경을 연출했다. 한 소식통은 “말단 사무관에게까지 직접 전화를 해 자료의 미비점을 지적하는 등 이례적인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고 전했다.
그러던 차에 16일 강 장관의 국회 발언이 나오자 17일에는 미확인 '지라시'까지 돌았다. 김 차장이 강 장관과 영어로 싸우다 영어 F로 시작하는 거친 ‘F 워드’ 욕설까지 썼다는 것이다.
당국자는 “사실무근”이라며 “아이들도 아니고, 고위 당국자들이 그런 싸움을 벌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부인했다.

대일 외교전 중 '적전분열' 양상 우려  

하지만 잘잘못을 떠나 차관급인 국가안보실 2차장이 외교부 장관과 거친 언사를 주고받았다는 이야기가 확산하는 것 자체가 청와대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대일 외교전쟁이 진행 중이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한ㆍ미 동맹 이상설이 증폭되는 가운데 적전분열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소신을 좀처럼 굽히는 법이 없는 김 차장이 트위터에 “소용돌이치는 국제정세에서 최선의 정책을 수립하려고 의욕이 앞서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 제 자신을 더욱 낮추며 열심히 하겠다”는 글을 올린 것은 이런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청와대 차원의 결정이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그래서 나온다.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 여전 

다만 휴전은 했지만, 종전은 아니라는 시각도 많다. 이런 현상은 모든 외교·안보 정책에서 청와대가 전적인 결정권을 행사하고 외교부는 ‘패싱’ 당하는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전경. 유지혜 기자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전경. 유지혜 기자

김 차장의 스타일을 탓하기 전에 관성에 젖은 외교부의 업무 행태가 문제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정부 소식통은 “청와대 내에서는 오히려 외교부가 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김 차장이 이 일로 위축된 분위기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청와대 기류 "오히려 외교부가 변해야" 

청와대 관계자는 “외교부와 산업부의 일하는 방식이 좀 다르다. 대통령 순방 행사 때는 좀 더 창의력을 요구하다 보니 무난하게 가려는 외교부 스타일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산업부식 김 차장의 스타일이 부딪힌 것이지 뿌리 깊은 갈등이 있다거나 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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