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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웅걸 "피의사실 공표 금지 맞다, 단 조국 이후에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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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웅걸 전 전주지검장. [뉴스1]

윤웅걸 전 전주지검장. [뉴스1]

"피의사실 공표를 못 하게 하는 방향은 옳다. 다만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 이후 적용하는 게 헌법 정신에 맞다."

윤웅걸 전 전주지검장, 헌법 128조 2항 인용 #"권력자가 자신한테 유리하게 제도 바꿀 때 #그 혜택 못 누리게 임기 이후 적용해야" #현직 시절 '포토라인' 등 檢 관행 깬 인물 #尹 "집권 세력, 정적 제거 땐 침묵하더니… #조국 보호하려 제도 만드니 '위인설제'"

윤웅걸(53·사법연수원 21기) 전 전주지검장은 17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권력자가 자기한테 유리하게 제도를 만들거나 바꿀 때는 본인에게는 효력을 미치지 않게 하는 게 헌법 정신"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조국(54)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신설 등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수사공보준칙 개정에 나선 것을 두고서다.

검찰이 수사 중인 피의사실을 공표할 경우 대검찰청이 직접 감찰을 받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포토라인' 관행도 없애고, 수사 당사자 동의 없이는 소환 일정도 공개하지 못하도록 규정이 바뀌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조 장관과 그 일가 관련 여러 의혹을 수사하는 시점에 법무부가 언론 취재를 원천 봉쇄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수사공보준칙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어서 '정부가 제도까지 바꿔 가며 조국 구하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전날 송인택(56·연수원 21기) 전 울산지검장은 "검찰 수사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며 "조국 장관 가족과 관련자들이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조 장관은 이 문제에서 빠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7월 퇴임한 송 전 검사장은 검찰 내부에서 피의사실 공표를 처음으로 공론화하고 연구해 관련자들을 입건까지 했던 인물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7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예방을 위해 국회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7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예방을 위해 국회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시기 검찰을 떠난 윤 전 검사장은 현직 시절 "포토라인 세우기와 피의 사실 흘리기, 수갑 채우기 등 피의자를 압박하는 검찰 수사 관행을 깼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전주지검장 재임 시절 전북지사와 전북교육감, 최규호·최규성 형제 등을 잇달아 기소했다. 각각 공직선거법 위반 및 특가법상 뇌물 혐의 등이다.

특히 8년 넘게 행방이 묘연했던 최규호 전 전북교육감 검거는 당시 전주지검 수뇌부의 최대 치적으로 꼽혔다. 더불어민주당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최규성 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친형인 최 전 교육감의 도피를 도운 '몸통'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하지만 전주지검은 이른바 대어(大魚)를 낚고도 최씨 형제와 현직 단체장들을 포토라인(기자들이 합의한 사진 촬영 지역)에 세우지 않았다. 피의자 소환도 비공개로 했다. 전주지검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해 6월 윤 전 검사장 부임 이후 생긴 변화였다.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 [연합뉴스]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 [연합뉴스]

그는 당시 이재수(사망 당시 60세) 전 국군기무사령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검찰이 피의사실을 일부러 언론에 흘려 군중의 분노를 등에 업고 수사의 동력으로 삼아선 안 된다"며 전주지검에서 포토라인 등을 없앴다. 이 전 사령관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불법 사찰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검찰 수사를 받다 지난해 12월 7일 투신해 숨졌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관행에 제동을 걸었던 윤 전 검사장이 최근 법무부의 수사공보준칙 개정 움직임에는 왜 의구심을 나타내는 걸까. 그는 여전히 "검사들이 국민의 알권리나 오보 방지 등을 빙자해 무분별하게 피의 사실을 흘리는 건 문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적폐 수사를 할 때는 같은 검사가 보기에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피의사실을) 까발렸는데 그때는 함구하던 청와대와 여권이 조국 장관 임명 이후 피의사실 공표를 전면 금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는 건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 전 검사장은 "수사공보준칙을 바꾸더라도 '조국 임기 이후부터' 또는 '조국 (일가) 수사를 제외하고'라는 부칙을 달아 조 장관이 그 혜택을 누려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헌법 128조 2항을 예로 들었다.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는 조항이다. "현재 조 장관 부인과 5촌 조카 등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법무부가 조 장관 가족에게 혜택이 가는 쪽으로 수사공보준칙을 개정하는 건 헌법 정신에 반한다"는 취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식 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검찰총장이 1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식 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이는 조 장관이 전날 언급한 '헌법 정신'과 묘하게 대비된다. 앞서 조 장관은 16일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저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제 친인척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거나 보고받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며 "억측이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 수사와 기소를 포함한 법무 행정 일반이 헌법 정신에 맞게 충실히 운영되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감독할 것"이라며 "조직 개편, 제도와 행동 관행 개선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을 수사 중인 상황에서 법무부가 수사공보준칙을 개정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윤 전 검사장은 "정적을 제거할 때는 입을 다물고 그 이익을 향유하던 집권 세력이 왜 하필 검찰이 자기들에게 칼을 들이대니 피의사실 공표 금지 등을 운운하느냐"며 "국민의 권리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조국이라는 특정 인물을 보호하기 위해 제도를 바꾼다는 점에서 '위인설관(爲人設官)'과 비슷한 '위인설제(爲人設制)'"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직 검사장 시절에도 본인 실명을 걸고 현 정부 방향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6월 두 차례에 걸쳐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검찰개혁론'을 통해 "검사는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직접 수사 대신 수사 지휘에 집중함으로써 '팔 없는 머리'로 돌아가자"며 정부가 추진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당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사법제도를 저렇게 엉망으로 만드는데 현직이고 뭐고 따질 계제가 아니다.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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