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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금리 뉴노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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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1972년 7월 스위스중앙은행은 비거주자의 예금금리를 마이너스로 끌어내렸다. 1차 오일쇼크 직전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자 안전자산인 스위스 프랑에 수요가 몰리며 자국 통화의 몸값이 고공행진해서다. 통화 강세는 수출 경쟁력 하락의 동일어다. 때문에 자금의 유입을 막으려 마이너스 금리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예금하거나 채권을 사면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보관료 개념의 수수료를 내는 것이다. 예금이나 채권 투자보다 돈을 쓰는 게 낫다. 화폐의 세 가지 기능(교환 매개, 가치 척도, 가치 저장) 중 가치 저장 기능을 막고 교환 수단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게젤세(Gessell’s Tax)’로도 불린다. 독일의 경제학자인 실비오 게젤은 현금을 쌓아두는 사람에게 주당 0.1%, 연 5.2%의 세금을 물릴 것을 주장했다.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셈으로 사람들이 결국 돈을 쓰게 돼 경기가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른바 ‘늙는 돈’인 ‘자유 화폐’도 제안했다. 발행 뒤 일정 시점 이후부터 액면 가치를 일정 비율로 낮춰 돈을 쓸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은 12일 시중은행이 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하는 예금금리를 -0.5%로 0.1%포인트 낮췄다. 디플레이션 대응을 위해서다. 일본(-0.1%)과 스위스(-0.75%), 덴마크(-0.65%) 등도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발행채권의 25%가 마이너스 금리다.

낯설었던 마이너스 금리가 ‘뉴노멀’이 되고 있다. 디플레이션을 막고 경기 부양을 위해 꺼내 든 카드지만 이자나 연금 생활자의 지갑이 얇아져 경기가 냉각될 수도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경제를 살릴 극약처방일지 명줄을 단축할지 알 수 없지만 세계 경제가 미답의 길에 선 것은 분명하다.

하현옥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