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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 전패' 한국농구…아시아 한계인가, 시스템 문제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중국 우한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 월드컵 3차전에서 대패를 당한 뒤 한국농구대표팀 라건아(오른쪽)와 최준용(왼쪽)이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 대한농구협회]

지난 4일 중국 우한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 월드컵 3차전에서 대패를 당한 뒤 한국농구대표팀 라건아(오른쪽)와 최준용(왼쪽)이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 대한농구협회]

3전 전패.

중국 등 아시아 6팀 상위라운드 불발 #해설위원 "피지컬 한계, 세밀함도 부족" #한국은 협회·지도자·KBL 현대농구 못따라가 #연대 이정현 등 젊은피, 평가전 경험 쌓아야 #열악한 환경서 최선다한 선수들, 안쓰러운 시선도

한국남자농구대표팀이 2019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에서 받은 초라한 조별리그 성적표다.

한국(FIBA랭킹 32위)은 지난 4일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나이지리아(33위)에 66-108, 42점 차 참패를 당했다. 앞서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5위)에 26점 차로 졌고, 2차전에서 러시아(10위)에 73-87로 패했다. 한국은 순위결정전으로 밀려났다.

한국 뿐만 아니라 32개국 중 아시아 6개국 모두 조 2위까지 주어지는 상위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이란과 필리핀은 3전 전패에 그쳤고, 2패 중인 일본과 요르단은 남은 한 경기에 관계없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개최국 중국은 베네수엘라를 꺾고 아시아팀 중 유일하게 1승을 챙겼으나 1승2패에 머물렀다.

한국은 귀화선수 라건아, 중국은 미국프로농구(NBA) 출신 이젠롄(2m13㎝), 일본은 NBA 워싱턴 위저즈 하치무라 루이 등을 앞세워 이변을 꿈꿨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시아는 월드컵 최고성적은 1953년 필리핀이 기록한 3위고, 최근 3개대회에서 8강 진출도 전무하다.

일본농구대표팀 하치무라가 상하이에서 열린 농구월드컵 경기에서 체코 수비에 막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농구대표팀 하치무라가 상하이에서 열린 농구월드컵 경기에서 체코 수비에 막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시아농구의 한계일까. 한국 최고 포인트가드 중 한명으로 꼽혔던 김승현 SPOTV 해설위원은 “농구에서 세계의 벽은 너무 높다. 2006년 미국대표팀과 경기했을 때 피지컬 차이를 절감했다. 이번 나이지리아전도 월등한 피지컬과 개인능력에 밀린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일 SPOTV 해설위원은 “개최국 중국은 대회를 앞두고 평가전을 20차례고, 일본은 독일과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농구 종목 자체가 피지컬과 운동능력의 한계가 크다. 5명이 뛰고 코트는 야구장이나 축구장보다 좁다. 게다가 손으로 하는 종목이라 애초 이변이 적은 종목”이고 말했다.

손대범 KBS 해설위원은 “언더독이 반란을 일으키려면 많은 것들이 일치해야 한다. 이란은 푸에르토리코와 1차전에서 역전패를 당하면서 힘이 풀렸다. 일본은 NBA 소속 하치무라와 와타나베 유타(멤피스), 귀화선수 닉 파지카스 3명이 있지만, 다른선수들의 서포트가 부족했다. 중국도 이젠롄 외에 다른 젊은선수들이 얼어 붙었다”며 “중국과 이란은 신체적 조건에서는 밀리지 않았는데 세밀함 같은 소프트웨어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4일 나이지리아와 3차전에서 슛을 쏘는 이정현. [사진 대한농구협회]

4일 나이지리아와 3차전에서 슛을 쏘는 이정현. [사진 대한농구협회]

전문가가 바라본 한국농구의 아쉬웠던 점은 무엇일까. 손대범 위원은 “5년 전 월드컵 당시 한 경기에 3점슛 10개 이상을 성공한 팀이 많지 않았는데, 이번 대회에 3점슛 시대가 왔다. 난사가 아니라 모든선수들이 쉽게쉽게 올라가 정확하게 넣는다”며 “또 우리 선수들이 지쳐서 대회에 나갔다. 최종명단을 너무 빨리 확정했다(7월24일). 대회까지 돌려가면서 점검했으면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일 위원은 “세계적인 농구추세는 넘어가자마자 스크린 걸고 얼리오펜스하고 안되면 세팅한다. 기본적으로 신장이 중요하지만, 키가 작더라도 기동력과 슈팅이 좋은 선수가 살아남는 ‘스몰볼’로 바뀌고 있다”면서 “그래도 한국 젊은선수들이 기회가 되면 빨리 던지려는게 보였다. 하지만 대한농구협회, KBL(프로농구연맹), 코치진이 현대농구를 못따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빨리 공격하라는 지시가 뒤늦게 나왔다. 쿼터 종료 35초가 남으면 NBA는 한번 더 공격하려고 빠른농구를 하는데, KBL은 24초를 다 쓴다”고 지적했다.

한국농구 미래로 불리는 연세대 이정현. [대학농구연맹 제공]

한국농구 미래로 불리는 연세대 이정현. [대학농구연맹 제공]

한국농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손대범 위원은 “20년 넘게 이어진 프로농구를 비디오게임처럼 바로 바꿀 순 없다. 청소년대표 출신 이정현(20·연세대), 양재민(20·미국 유학중) 등 젊은 선수들에게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줘야 한다. 월드컵 시즌이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평가전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며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은퇴한 하승진은 최근 유튜브에 “협회 대우는 말이 안된다. 예산이 없어 예전 유니폼 재고를 준다. 사명감을 가져달라며 격려금을 주는데 차마 얘기 못할 만큼 민망한 금액”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김승현 위원은 “선수들이 졌지만 잘싸웠다고 생각한다. 프로농구 시즌을 앞두고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간선수도 있다. 국가대표가 쉽게 되는 자리는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해도 욕먹는 자리다. 비시즌에 나라를 위해 뛴 선수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조현일 위원도 “농구선수들을 보면 안타까운 측면도 있다. 농구월드컵은 대중의 관심이 적은 편이다. 프로농구 개막을 한 달 앞두고 국가대표를 위해 헌신했지만, 돌아오는건 ‘전패, 25년 만의 또 첫승 실패’란 이야기다. 저 같아도 뛰는게 부담스러울 것 같다. 국가대표라는 명예는 있지만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졸전이었지만 그래도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4일 중국 우한에서 열린 농구 월드컵 B조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의 경기에서 양희종이 패스하고 있다. [대한농구협회 제공]

4일 중국 우한에서 열린 농구 월드컵 B조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의 경기에서 양희종이 패스하고 있다. [대한농구협회 제공]

양희종(KGC인삼공사)은 “(팬들에게)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신체 조건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또 농구인들이 하나로 뭉쳐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월드컵에 온 선수들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아직 월드컵이 끝난 건 아니다. 남은 2경기에서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6일 오후 9시 광저우에서 A조 3위 중국(30위)과 순위결정전 1차전을 치른다. 8일 코트디부아르를 상대한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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