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조국 카드 득실만 따지는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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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김민욱 사회2팀 기자

김민욱 사회2팀 기자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이렇게까지 공감한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없었지.”

지난달 초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주변 선술집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일선 경찰들의 평가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직후다. 조 후보자는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권력기관의 개혁방안 중 하나로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수차례 강조해온 바 있다.

이에 ‘조국 법무 카드’로 70년 경찰의 숙원인 수사권 조정이 마침내 이뤄질 듯한 기대감이 경찰조직에 전해진 게 사실이다. 1945년 미(美) 군정청 산하 경무국으로 출발한 경찰은 지금과 달리 수사권을 가졌었다. 그러다 1948년 미 군정 검찰청법 제정으로 사실상 수사권을 갖지 못하게 된다. 당시 검찰청법은 검찰(관)의 직권에 “범죄수사” “사법경찰관의 지휘·감독”을 명시했다. 앞서 새로 임명된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사권 조정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로도 경찰 내 기대감이 높아진 터였다.

하지만 요즘은 딴판이다. 사석에서 “조 후부자가 장관으로 임명돼도 걱정, 낙마해도 걱정”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웅동학원 재단 비리 의혹, 사모펀드 투자 의혹 등 조 후보자의 가족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제기되면서다. 수사권 조정안을 담은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돼야 하는데 자칫 검찰에 소환될 수도 있는 조 후보자의 임명이 법안 처리에 부담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구조 개혁의 키를 쥔 법무부장관이 개혁을 위한 지지를 받지 못해 동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야당에 반대 명분을 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와 반대로 조 후보자가 수사권 조정에 대한 이해가 깊은 만큼 낙마해도 걱정이라는 것이다. 조 후보자는 경찰의 독자 수사권 확보를 전제로 한 ‘경찰 내부 수사지휘의 합리적 운용방식에 대한 연구’(2013) 보고서도 썼을 정도다.

이런 ‘조국 법무 카드’의 득실을 따지는 경찰 내부 분위기에 익명을 요청한 간부는 “수사권 조정은 결국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결코 이뤄질 수 없다”고 말을 흐렸다. “이럴 때일수록 경찰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다지고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지난달 서울지방경찰청에 자수하러 온 일명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30대 피의자를 경찰이 가까운 종로경찰서로 가라고 안내하는 일이 생겼다. 앞서 7월에는 모 기동단 소속 경찰이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성과 성관계를 하던 중 동의 없이 촬영한 혐의로 고소되기도 했다. 자신이 담당하는 관할 구역에서 바지사장을 내세워 성매매 업소를 운영해온 경찰 간부가 실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다. 경찰관들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하는 직원이 대부분이다”고 항변한다.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경찰인력은 11만8651명(지난해 기준)이다. 일부 경찰관의 일탈이 전체인 양 호도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경찰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는 일(경찰법)을 맡았기 때문에 더욱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모쪼록 경찰청장이 국무총리 앞에 불려가 혼이 나는 일은 더는 없어야겠다. 그래야만 법무부장관이 누가 되든 국민은 경찰이 원하는 수사권 조정을 지지할 것이다.

김민욱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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