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거주 탈북자 70% "기회되면 미국 망명하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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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탈북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응답자 70.5%가 '기회가 주어지면 美國 망명하고 싶다'고 답했고 '제3국으로 이민 갈 생각 있다'는 답도 66.4%에 달했다. 특히 54.6%나 되는 응답자가 '처벌 없으면 북한으로 돌아가는 생각도 한다'고 대답해 상황의 심각성을 더했다.

이는 18일 발매를 시작한 <월간중앙> 8월호가 지난 6월30일부터 7월4일까지 탈북자 단체인 '숭의동지회'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 거주하는 탈북자를 대상으로 서베이를 실시한 결과다. 회수율은 98.3% 295명에 달할 정도로 설문 대상인 탈북자들의 관심은 높았다.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요소는 차별이다. 응답자 51.1%가 '남한 사람들로부터 차별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차별은 취업과 소득의 불이익으로 직결된다. 61.4%가 실업 상태에 있으며, 취업자 중 정규직은 16.7%에 불과했다. 그들이 얼마나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일러주는 대목이다. 이런 결과로 탈북자의 65.7%는 월소득 100만 원 이하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는 '탈북자에 대한 차별(47.5%)'을 꼽았다. '언어'(40.3%)와 '돈벌이'(40.3%)가 어렵다는 탈북자도 많았다. 문화적 이질감(25.1%), 인간관계(16.6%),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분위기(12.2%)를 꼽은 탈북자는 비교적 적었다.

탈북자 가운데 20.0%는 남한 사람들에게 '매우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어느 정도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탈북자도 31.5%나 됐다. 탈북자 과반수가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 셈이다. 반면 전혀 차별받고 있지 않다는 응답자는 15.3%에 불과했다.

이들은 또 '남한에서 탈북자는 이등 국민인가'라는 질문에 19.7%가 '매우 그렇다', 29.2%가 '어느 정도 그렇다'고 응답했다. 역시 과반수의 탈북자가 스스로 이등 국민이라고 여기는 셈이다. 매우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8.8%에 불과했다.

흥미로운 점은 탈북자 스스로 자신을 이등 국민으로 여기는 것에 비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이상하리만큼 높다는 점이다. 탈북자 중 30.8%는 매우 자부심을 느낀다고 응답했으며, 어느 정도 그렇다는 응답도 46.8%에 달했다. 탈북자 중 77.6%가 자부심을 느낀다는 말이다. '별로 그렇지 않다'(11.9%)와 '매우 그렇지 않다'(6.8%)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는 북한의 생활에 비해서는 여전히 남한살이가 낫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일부 탈북자의 경우 재탈북 등으로 제3국으로 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 자포자기하면서 정부의 탈북자 정책 비난으로 생기는 불이익을 경계한 결과로 보인다.

남한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에 비해 현재 생활 형편에 대한 평가는 가혹하리만큼 낮았다. 남한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가장 높은 경우를 10, 가장 낮은 경우를 1이라고 했을 때 자신의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중 22.7%는 자신의 생활수준이 최하 1분위에 속한다고 답했다.

2분위에 속한다고 응답한 탈북자는 13.6%, 3분위에 속한다고 응답한 탈북자는 15.9%, 4분위에 속한다는 응답자는 10.8%였다. 평균 수준인 5분위에 속한다는 응답자는 20.3%였다. 반면, 6분위부터 10분위에 속한다고 답한 탈북자는 전부 합쳐도 16.5%에 불과했다. 생활에 대한 만족도와 비교했을 때 놀라운 수치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5년 후의 생활 형편이 현재와 비교해 어떻게 변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26.1%였으며, 지금보다 조금 더 좋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43.7%나 됐다. 현재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탈북자는 21.1%, 현재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탈북자는 8.8%에 그쳤다.

오효림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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