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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으로 변한 아마존···'브라질의 트럼프'가 망쳤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28일 브라질 포르투벨류 인근에서 한 농부가 연기 속을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8일 브라질 포르투벨류 인근에서 한 농부가 연기 속을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월 말 발생해 한 달여 동안이나 꺼지지 않고 있는 브라질 아마존 밀림 화재가 전 지구적인 재앙으로 번질 조짐이다. 화마의 직접 영향권에 있는 지역에서는 노약자들의 호흡기 질환이 급증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향후 기후변화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며 아마존 산불 사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아동 호흡기질환 환자 3배 급증"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들은 어린이와 노인들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현지시간) 아마존 화재가 확산한 기간 중 400여명의 어린이 환자들이 호흡기 문제를 호소하며 브라질 혼도니아주(州) 포르투벨류의 국립 어린이병원을 찾았다고 전했다. 평소보다 3배나 많은 숫자다.

혼도니아주는 브라질의 서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극심한 화재에 시달리는 아마존 밀림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어 화재의 직접 영향권이다. 혼도니아주보다 더 서쪽에 위치한 아크리주에서도 같은 기간 약 4만 7000명의 호흡기질환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아마존에서의 화재는 흔한 일이다. 잦은 벌목과 목장 및 경작지 확보를 위한 인위적인 불이 종종 화재로 번지는 탓이다. 그러나 이번 화마가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평소보다 월등히 많은 건수와 규모 때문이다.

브라질 파라주(州) 인근에서 아마존 밀림을 삼킨 불이 거대한 연기를 피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브라질 파라주(州) 인근에서 아마존 밀림을 삼킨 불이 거대한 연기를 피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INPE)는 올해 아마존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가 지난해보다 85% 급증한 7만 4000건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8월에만 2만 5000건의 불이 났다. INPE는 지금도 1분당 축구장 1.5개 크기에 해당하는 아마존 밀림이 잿더미로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브라질 정부는 군 병력 4만 6000여명을 투입하는 등 진화를 위해 전력투구 중이지만 이미 약 9500㎢에 달하는 우림이 훼손됐다. 서울시 면적의 15배가 넘는 크기다.

브라질 정부의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재로 인한 연기가 전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호흡기 질환 환자가 브라질 전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숲을 태운 연기가 브라질 최대 도시인 상파울루에서도 관찰된 것이 그 증거다. 상파울루는 화재 지역과 가까운 포르투벨류에서 남동쪽으로 3000㎞나 떨어져 있는 도시다.

포르투벨류의 소아과 의사인 이자우라 드 캄포스는 WP와의 인터뷰에서 "매년 화재를 겪고 이에 따른 연기가 문제가 되지만 올해는 최악의 상황"이라며 이번 화재의 심각성에 혀를 내둘렀다.

브라질 아마존 화재가 밀림을 잿더미로 만든 모습. [AP=연합뉴스]

브라질 아마존 화재가 밀림을 잿더미로 만든 모습. [AP=연합뉴스]

미항공우주국(NASA) 지구관측소가 지난 24일 공개한 브라질 아마존 밀림의 화재 모습. [EPA=연합뉴스]

미항공우주국(NASA) 지구관측소가 지난 24일 공개한 브라질 아마존 밀림의 화재 모습. [EPA=연합뉴스]

전 세계 기후변화 가속화 우려

호흡기 질환 확산이 브라질 국민이 처한 눈앞의 현실이라면 전 지구적인 생태계 변화는 인류의 재앙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아마존 화재 사태가 기후 변화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환경운동단체인 '산림 및 기후 이니셔티브'의 더그 바우처 고문은 28일 BBC 방송을 통해 "올해 발생한 아마존 산불은 우리가 세운 기후변화 목표에 명백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2℃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아마존의 산불이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아마존은 지구 산소 공급의 2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데, INPE는 이번 산불이 아마존 열대우림 생태계의 15∼17%를 파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브라질 아마존 화재가 밀림을 잿더미로 만든 모습. [AP=연합뉴스]

브라질 아마존 화재가 밀림을 잿더미로 만든 모습. [AP=연합뉴스]

콜롬비아의 브라질 영사관 앞에서 지난 23일 아마존 화재와 관련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을 비난하는 시위대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얼굴을 그려 넣어 조롱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스페인어로 쓰인 시위 문구는 '미래의 파괴자'다. [EPA=연합뉴스]

콜롬비아의 브라질 영사관 앞에서 지난 23일 아마존 화재와 관련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을 비난하는 시위대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얼굴을 그려 넣어 조롱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스페인어로 쓰인 시위 문구는 '미래의 파괴자'다. [EPA=연합뉴스]

아마존 화마 배경엔 브라질 정부

아마존 밀림 화재가 예년보다 심각해진 원인은 무엇일까. 외신들과 환경단체는 브라질 정부의 아마존 개발 정책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올해 초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무분별한 아마존 개발 정책이 추진된 탓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난 1월 1일 취임했다. 극우 성향의 사회자유당(PSL) 출신 정치인으로, 지난해 대선 당시 “여성과 흑인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독재 시절엔 거리가 안전했다" 등 막말을 내뱉으며 '브라질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얻은 인물이다.

보소우나루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 바로 아마존 개발이다. 극우 성향 정부가 들어서 개발 정책을 추진하자 아마존 밀림이 직격타를 맞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마존 밀림에서의 목축업 확산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호물로 바티스타 그린피스 연구원은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목축업 확대가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의 주요 원인"이라며 "지금까지 훼손된 지역의 65% 이상이 소 방목장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브라질의 가축용 소 40%가 아마존 밀림 지역에 밀집해 있다. 목축과 농업을 위해 아마존을 난개발한 결과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보소우나루 대통령은 27일 아마존 밀림이 속해있는 지역의 주지사들과 만나 "원주민 보호구역이 너무 많다"며 개발을 장려하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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