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송지훈의 축구.공.감] 유럽 빅클럽들이 서귀포에서 머리 맞댄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제주국제유스축구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브라질 명문 파우메이라스 선수들. [사진 서귀포시청]

제주국제유스축구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브라질 명문 파우메이라스 선수들. [사진 서귀포시청]

“공부하는 축구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박문성 축구해설위원

“우리 팀 13~15세 선수들은 학교에서 점심식사를 마치면 클럽하우스로 데려와 오후 훈련을 합니다. 이후 다시 학교로 데려다줍니다. 어린 축구선수 중 프로 무대까지 진출할 가능성은 1% 남짓이에요. 공부를 등한시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 이안 보기 뉴캐슬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유스팀 감독
“학교에 다니는 건 학생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선수들은 17살까지 매일 5~6시간 수업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선수 등록 자체가 불가능하지요.” - 루카스 페레이라 파우메이라스(브라질) 유스팀 감독
“중학교까지는 축구선수들도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합니다. 16살을 넘기면 오후 2시까지 수업한 뒤 훈련을 하지요.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습니다.” - 야마자키 유지 가시마 앤틀러스(일본) 유스팀 감독

같은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대륙에 속한 명문 클럽 유스팀 감독들이 내놓은 답이다. 학습권을 보장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부하는 축구선수’의 당위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질문도 대답도 지난 11일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지도자 컨퍼런스에서 나왔다. 13~18일 제주 서귀포 일대에서 열린 2019 제주국제유스축구대회 개막에 앞서 주최측인 서귀포시(市)가 마련한 자리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를 포함해 연령별 국제대회는 국ㆍ내외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바람직한 선수 육성 방안까지 논의하는 모습은 이례적이다.

제주국제유스축구대회 개막에 앞서 박문성 축구해설위원의 진행으로 참가팀 지도자가 참여하는 컨퍼런스 행사가 열렸다. [사진 서귀포시청]

제주국제유스축구대회 개막에 앞서 박문성 축구해설위원의 진행으로 참가팀 지도자가 참여하는 컨퍼런스 행사가 열렸다. [사진 서귀포시청]

서귀포시가 국제대회 개막에 앞서 지도자 컨퍼런스를 기획한 건, 이 대회가 갖는 의미와 목적을 지도자들에게 강조하기 위해서다. 홍정욱 서귀포시 체육진흥과 주무관은 “단순히 우승과 성적만을 바라보는 대회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면서 “서로 다른 지역과 문화권에서 모인 팀과 선수들이 서로 교류하며 ‘경험’을 가져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도자 간 교류의 시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지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컨퍼런스가 끝난 이후에도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지도자들이 여기저기 모여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대륙에서 모인 지도자들은 팀 매니저를 겸하는 통역 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효과적인 훈련 방법, 선수 다루는 요령 등 노하우를 공유했다.

릭 더 로이 에인트호번(네덜란드) 유스팀 감독은 “유소년 육성은 선수 개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되 ‘팀’이라는 틀 안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절대 쉽지 않다”면서 “다양한 대회에 참가해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건 선수들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성남 FC와 파우메이라스가 제주국제유스축구대회 결승전을 치르고 있다. [사진 서귀포시청]

성남 FC와 파우메이라스가 제주국제유스축구대회 결승전을 치르고 있다. [사진 서귀포시청]

서귀포는 최근 3년간 진행한 제주국제유스축구대회를 ‘미니 월드컵’ 수준으로 치렀다. 유럽, 남미, 북중미, 아시아 등 대륙별로 엄선한 20개 팀을 초청해 대회 수준을 높였다. 참가한 팀과 선수들이 서로를 통해 최대한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올해도 도르트문트(독일), 뉴캐슬(잉글랜드), 에인트호번(네덜란드), 파우메이라스(브라질), LA 갤럭시(미국), 가시마 앤틀러스, 감바 오사카(이상 일본), 상하이 선화(중국) 등 내로라하는 클럽들이 두루 참가했다. 국내에서도 전북 현대, 포항 스틸러스, 성남 FC, 제주 유나이티드, 부산 아이파크 등 K리그 산하 구단들이 나섰다.

대회의 질적 향상을 위해 수준 높은 팀들을 초청하는 등 과감하게 투자하는 건 서귀포시(시장 양윤경)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스포노믹스(스포츠+이코노믹스)’의 완성을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서귀포시는 지난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스포노믹스 육성사업’ 대상 지역으로 선정돼 받은 국가지원금으로 스포츠 및 레저에 과감한 투자를 지속해왔다. 축구를 포함해 여러 종목이 서귀포에서 수준 높은 환경에서 훈련과 경기를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아낌없이 투자했다.

이를 통해 제주국제유스축구대회가 3년이라는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서귀포’라는 브랜드를 국제 축구계에 알리는 이벤트인 동시에, 참가팀들에게 높은 수준의 경험과 만족도를 보장하는 대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우승팀 파우메이라스의 사령탑 루카스 페레이라 감독은 “아시아에서 열리는 여러 유소년 대회에 참가해봤지만, 수준 차이가 확실하다. (제주국제유스축구대회가) 가장 만족스러웠다”면서 “대회가 전반적으로 잘 조직됐다는 느낌이다. 전 세계에서 서로 다른 스타일을 가진 축구팀들이 모여 경쟁하는 이 대회가 내년에도 변함없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도자컨퍼런스에서 서로 다른 팀 감독들이 모여 앉아 각자의 의견을 밝히는 모습. [사진 서귀포시청]

지도자컨퍼런스에서 서로 다른 팀 감독들이 모여 앉아 각자의 의견을 밝히는 모습. [사진 서귀포시청]

향후 이 대회가 비슷한 수준의 규모와 권위를 유지하려면 인구 20만 명의 소도시 서귀포만의 노력과 투자로는 한계가 있다. 문화체육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지원도 올해로 끝난다. 다행스러운 건 서귀포시 내부적으로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은 이 대회를 어떻게든 지켜내야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양윤경 서귀포시장은 지난 18일 결승전 직후 “서귀포의 미래 살림살이를 책임질 스포노믹스 관련 사업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면서 “제주국제유스축구대회를 각 대륙의 톱클래스 팀들이 참여하는 권위 있는 대회로 키워나가고 싶다. 이를 위해 정부와 도를 포함해 다각도로 대화하며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 말했다.

주최측과 참가팀, 팬들이 모두 만족하는 국제대회를 만드는 건 절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국제유스축구대회는 흔치 않은 성공 사례다. 같은 맥락에서 내년 이후에도 이 대회의 권위를 꾸준히 유지할 방법을 찾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의지만으로는 부족하지만, 그 의지가 큰 변화를 끌어내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중앙일보 축구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