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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난임’ 우후죽순 지원에 의료계 “즉각 중단” 반발, 양·한방 또 충돌

중앙일보

입력

“이번에 실패하면 시험관은 쉬고 운동하면서 난임 한의원 다녀볼까 생각 중입니다.”
“난임 5년 차입니다. 시술은 다 실패네요. 몸도 마음도 지쳐서 한의원 가려고 하는데 잘하는 곳 아시나요.”

지자체, 조례 제·개정해 난임 부부에 한방 치료 지원 # 산부인과학회 “혈세 낭비, 선심성 사업 확대 반대”

20일 난임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의원’이란 키워드를 넣자 검색된 글들이다. 이처럼 정부가 일부 비용을 대주는 체외수정(시험관아기) 시술이나 인공수정을 포함한 치료에 실패한 난임 부부들에 한방 난임 치료는 또 다른 희망 줄이다. 병원을 여러 차례 다닌 끝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한방 치료에 눈을 돌리는 환자가 많다. 한방 난임 치료는 개인 체질에 맞춘 한약과 침, 뜸 등을 통해 자연임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최근엔 조례를 제·개정해 한방 난임 치료를 지원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들이 하나둘 늘면서 난임 부부의 관심이 더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자 의사들이 “혈세 낭비”라며 사업 확대에 반발하고 나서면서 한방 난임 치료가 양·한방의 또 다른 갈등 요인으로 떠올랐다.

“선심성 사업“ vs “정보 왜곡” 

현재 보건복지부는 체외수정과 인공수정 등에 한해 난임 부부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부턴 시술비 지원 연령 기준을 폐지하고 지원횟수도 늘렸다. 한방 난임 치료의 경우 중앙정부 지원은 따로 없다. 대신 지자체가 나서 난임 부부에 대한 경제적 부담 경감이나 지역 인구 늘리기와 같은 지방 시책의 목적으로 지역 한의사회와 협력을 통해 지원 중이다. 대한한의사협회에 따르면 2016년부터 현재까지 경기와 부산 등 전국 22곳 기초자치단체에서 한의약 난임 치료 지원 근거 마련을 위한 조례 제·개정을 끝냈다. 한방 난임 치료를 지원하겠다는 지지체의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한방 난임 치료 지원 움직임을 확산하면서 한방 난임 치료가 양·한방의 또 다른 갈등 요인으로 떠올랐다. [사진 pxhere]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한방 난임 치료 지원 움직임을 확산하면서 한방 난임 치료가 양·한방의 또 다른 갈등 요인으로 떠올랐다. [사진 pxhere]

그러자 의사들이 지지체 사업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즉각 중단’을 주장하고 나섰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선심성 한방 난임 지원사업 확대를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방 난임 치료의 효과와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다. 학회는 “체외수정이나 인공수정 등을 통한 난임 치료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입증됐지만 한방 치료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연구 등을 통해 효용성을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방 난임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한약재 중 세계보건기구(WHO)의 임부 금기 품목 등이 다수 포함돼있다”라고도 주장했다.

학회는 지난 2006년 대구를 시작으로 각 지자체에서 진행된 한방 난임 치료 지원사업 결과에 대해 “(임신 성공률이) 자연 임신율보다 낮게 나타났다”면서 “국민의 혈세를 투입할 가치가 있는 치료인지 의문스럽다”라고도 비판한다. 표준화된 치료법이 없어 한의원마다 한약의 성분, 복용 기간, 침, 뜸 등의 치료방법이 천차만별이며 체계적 교육받은 난임 전문 한의사가 없다는 점도 문제라는 게 이들 주장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한방 난임 치료 지원 움직임을 확산하면서 한방 난임 치료가 양·한방의 또 다른 갈등 요인으로 떠올랐다. [사진 pixabay]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한방 난임 치료 지원 움직임을 확산하면서 한방 난임 치료가 양·한방의 또 다른 갈등 요인으로 떠올랐다. [사진 pixabay]

한의사 단체는 의사들 주장에 “정보 왜곡이자 폄훼”라고 맞받아친다. 우선 성공률이 낮은 데 대해 주로 대상자들이 양방 치료에 실패한 후 한방 난임 치료에 도전하는 만큼 성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서도 “한의학에서는 수천 년 동안 전통적으로 난임 치료와 임신 중 안태(安胎)나 유산 방지를 목적으로 한약을 처방했다”며 “임상 현장 및 임상 연구 등을 통해 입증됐다”는 게 한의사들의 입장이다.

한의약 치료가 임신 초기 태아에 해롭다는 데 대해서도 “이 주장의 근거는 몇 개의 동물 실험 결과인데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 대상의 임상 연구 결과는 임신 중 한약 사용이 안전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피해야 할 한약에 대해서도 진료 매뉴얼로 만들어 현장에서 인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한의계에선 “입덧 한약을 먹은 경우 예기치 못한 입원의 발생을 줄이고 총 의료비 지출을 줄인다고 보고됐다”고 강조한다. 양방 쪽 시술 등이 늘면서 예전과 달리 계류유산이 많아졌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계류유산이란 임신 20주 이전에 발달과정에서 태아가 보이지 않거나 사망한 태아가 유산을 일으키지 않고 자궁에 잔류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밥그릇 싸움보다 협진해야” 목소리도

난임 치료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환자 입장에선 지원이 많을수록 나쁠 건 없다. 때문에 양측이 갈등을 멈추고 환자를 위해 협진해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난임으로 치료 중이라는 여성은 “한방, 양방 모두 해당 사업을 통한 임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한방 지원으로 몸을 관리하고, 동시에 양방을 병행하게 해주는 게 난임 당사자에겐 가장 최선인데 양쪽 다 밥그릇 싸움만 한다”고 썼다. 또 다른 여성도 “양·한방이 협진하면 저출산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적었다.

한 대학병원 난임 검사 연구원이 정액 검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 대학병원 난임 검사 연구원이 정액 검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의사협회도 한방과 양방 치료의 시너지를 강조하고 있다. 난임 전문 한의원 등에서 시험관 시술에 실패한 난임 여성이 회복할 수 있도록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 뒤 산부인과에서 체외수정 등을 시도해 임신율을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안병수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방향이 제시되고 있는데 한의 쪽도 완벽하지 않고 양의도 마찬가지”라며 “한약과 양약 병행치료는 근거 수준과 편익이 신뢰할 수 있고, 비교적 안전하면서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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