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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 → ○본부장, 임원직급 탈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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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최태원 SK 회장(오른쪽)이 19일 오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2019 이천포럼 개막식’에서 기조 세션을 듣고 있다. 이천포럼은 이날부터 22일까지 열린다. [사진 SK그룹]

최태원 SK 회장(오른쪽)이 19일 오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2019 이천포럼 개막식’에서 기조 세션을 듣고 있다. 이천포럼은 이날부터 22일까지 열린다. [사진 SK그룹]

김 이사와 박 전무가 기업에서 사라지고 있다. ‘기업의 별’이라 불리는 임원 인사 제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다. 직급을 단순화하고 맡은 업무에 맞춰 부르는 게 변화의 방향성이다.

SK 전문성 중심으로 인사 개편 #현대차 임원 6단계서 4단계로 #수평조직 문화 타기업 확산될 듯

올해 들어 임원 인사 제도를 가장 먼저 손본 건 현대자동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3월 임원 직급체계를 6단계에서 4단계로 간소화했다. 개편에 따라 이사대우-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 등 6단계였던 임원 직급체계는 상무-전무-부사장-사장 등 4단계로 줄었다. 기존 이사대우-이사-상무 직급은 상무로 통합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개편 배경으로 직책 중심의 전문성 강화를 앞세웠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통해 직책과 역할 중심의 업무환경 조성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달 초부터 시행에 들어간 SK그룹의 개편 임원 인사 제도는 현대차그룹보다 파격적이다. SK그룹은 부사장·전무·상무로 구분했던 임원 직급을 없애고 하나로 통합했다. 호칭은 실장이나 본부장 등 직책 중심으로 바꿨다. 김 전무 대신 구매 본부장으로 부른다. SK그룹 관계자는 “위계를 강조하는 한국식 기업문화에서 탈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2·3위 그룹사의 임원 인사 제도 개편을 놓고 재계에선 일본식 인사 제도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란 해석이 나온다. 상무-전무-부사장으로 이어지는 임원 직급 체계는 일본식 기업 시스템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수입됐다. 일본에선 죠우무(じょうむ)라 부르는 상무(常務) 직급을 사용한다. 여기에 센무(せんむ)라 부르는 전무(專務) 직급도 쓴다.

국내 기업의 임원 인사 제도가 가장 크게 변화한 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기를 거치면서다. 임원 성과주의를 도입하면서 직급을 세분화했다. 상무 갑·상무 을 또는 전무 A·전무 B와 같은 요즘엔 낯선 임원 직급 체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의사 결정 단계가 복잡하고 기업 임원의 전문화 추세가 이어지면서 직급 간소화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를 두고 기업법 전문가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진출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설명한다. 상법을 전공한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안 유지 등을 이유로 기업 이사회에 참석하는 등기 이사 숫자를 줄이는 건 국내를 비롯해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이에 따라 이사회 결정 사항을 실행하는 기업 임원에 대한 전문성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모든 일에서 평균적인 성과를 내는 제너럴리스트가 아닌 특정 분야에서 평균 이상의 성과를 내는 스페셜리스트에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권 교수는 “임원 제도 단순화는 빠른 의사 결정에 긍정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계에선 현대차와 SK의 임원 인사 제도 개편이 다른 기업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수평적 조직문화 및 워라벨 확산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업 환경 변화가 그 원인으로 꼽힌다. 기업 인사 제도를 연구한 김환일 전북대 취업지원본부 교수는 “임원 업무에 대한 전문성 평가 확대에 가볍고 빠른 조직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이 더해져 직책 중심의 인사 제도가 속도를 얻고 있다”며 “대기업이 임원 인사 제도 개편을 주도하고 있어 다른 기업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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