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은퇴 후 최고 주거지는? 문턱·계단 없는 편안한 내 집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영재의 은퇴와 Jobs(52)

고령의 부모가 살 집은 휠체어를 타고서도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주방을 개조하며, 낙상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화장실과 욕조를 안전한 공간으로 바꿔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 pixabay]

고령의 부모가 살 집은 휠체어를 타고서도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주방을 개조하며, 낙상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화장실과 욕조를 안전한 공간으로 바꿔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 pixabay]

최현석(56)씨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정부산하 기관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정년까지는 다닐 수 있고, 중소기업에서 관리업무를 하는 부인은 급여가 많지 않지만 4대 보험 혜택을 받으면서 맞벌이를 하고 있다. 둘 사이엔 대학 2학년인 아들과 올해 수험생인 딸이 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에 대해서는 믿음이 간다. 서울 근교에 작은 아파트가 한 채 있으며, 담보대출금을 성실하게 상환하고 있다. 이외엔 큰 부채가 없기 때문에 돈 문제와 관련해서는 안정적인 편이다.

지난달에 여동생으로부터 올해 88세인 아버지가 방 문턱에 걸려 넘어져 오른쪽 허벅지에 골절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해 52세인 여동생은 미혼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건축한 지 40년 된 단독주택에서 부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최 씨는 매월 50만원의 생활비를 동생 통장에 입금하면서 ‘원격부양’을 하고 있다. 관절염이 심한 85세 어머니를 오랫동안 아버지가 간병하고 있는데, 아버지 본인이 다리를 다치니 자신을 간병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건강보험 특성상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반 병원에서는 더 이상 보험혜택을 받기 힘들고, 요양 병원은 비용이 만만치 않다. [사진 pixabay]

건강보험 특성상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반 병원에서는 더 이상 보험혜택을 받기 힘들고, 요양 병원은 비용이 만만치 않다. [사진 pixabay]

최씨와 부인, 여동생은 직장생활을 해야 하고 60세인 누님이 있지만 유치원에 다니는 손주들을 돌보는데 온 정신을 쏟고 있는 형편이다. 아버지는 현재는 외과병원에 입원해 간병인을 쓰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쉬어야 하므로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다. 하지만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게다가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까지도 함께 돌봐야 하니 신경은 두 배로 쓰인다.

아버지가 고령이어서 골절이 빠른 시간에 회복되기는 어렵고, 거동이 불편해 혼자 생활하기도 힘들다. 건강보험 특성상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반 병원에서는 더 이상 보험혜택을 받기 힘들다. 요양병원은 비용이 만만치 않다. 장기 요양보험과 장애등급은 당장 해당되지 않는다. 최씨가 지금도 아쉬워하는 것은 평소에 부모 집에 갔을 때 문턱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수리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집수리를 하지 못한 점이다.

은퇴 주거지의 8가지 조건

은퇴 후 주거에 대한 선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반퇴세대에게 주택은 분양가 자율화, 분양권 전매 허용, 저금리상황 등으로 가격이 크게 뛰어 자연스럽게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됐다. 2년 단위로 이사를 해야 하는 전세 계약의 특성상 주거 생활의 안정을 위해서도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시 되었다.

내 집 장만에 그치지 않고 나중에 자식들에게 집 한 채 정도는 물려줘야겠다는 생각도 은연중에 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자녀들에게 상속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내 집을 소유하는 것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본인의 라이프스타일, 재무상황, 삶의 목적을 고려해 임대주택의 활용, 귀촌 등의 대안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평생 주택'은 연령이나 건강 단계별로 다양한 용도를 가진다. 집의 설비, 가족과 또는 공동체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진 pixabay]

'평생 주택'은 연령이나 건강 단계별로 다양한 용도를 가진다. 집의 설비, 가족과 또는 공동체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진 pixabay]

『100세 시대 은퇴 대사전』이란 책을 보면 주거를 결정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 고령이 되어가면서도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주거지인가?
- 자녀, 친구, 친척들과 원활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인가?
- 주택을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 문화활동, 사회활동,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골고루 할 수 있는 곳인가?
- 연령대별로 라이프스타일이 변해도 이사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인가?
- 온도, 습도, 풍경과 같은 자연여건이 적합한가?
- 노인들의 낙상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집을 수리할 수 있는가?
- 간병기가 되더라도 오랫동안 집에 머물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는가? 

은퇴자는 거주하는 지역사회에서 계속 지내는 것(Aging in place, AIP)이 가장 바람직한 가치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5 사회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시니어 중 75.1%는 향후에 자녀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고, 장래에 살고 싶은 곳으로는 자기집이 8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회적 관계 때문이다. 은퇴자가 거주지를 사는 곳에서 너무 멀리 옮기게 되면 자녀를 비롯해서 친구 등 그동안 자신이 속해있던 커뮤니티를 잃어버리게 되고 이것은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평생 주택’이라는 것이 있다. 평생 주택은 연령이나 건강 단계별로 다양한 용도를 가진다. 평생 주택은 집의 설비, 가족과 또는 공동체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하지만 은퇴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적 능력이 저하된다. 대부분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각종 신체사고는 대부분 가정에서 발생한다.

2013년 한국소비자원이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고령자의 사고 발생장소는 주택이 72.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의료서비스시설 10.8%, 상업시설 9.4%, 교통시설 7.7% 순으로 그 뒤를 이었다. 따라서 가정 내의 사고는 추락, 넘어짐, 미끄러짐이 전체 사고의 60% 이상을 차지하므로 이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대비책이 필요하다.

‘AIP’실현 위해 집 리모델링해야

휠체어나 보행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문 옆에 60cm 이상 공간이 있어야 문을 여닫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연령이나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개념이다. [중앙포토]

휠체어나 보행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문 옆에 60cm 이상 공간이 있어야 문을 여닫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연령이나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개념이다. [중앙포토]

은퇴자를 위한 주택 리모델링은 불필요한 공간의 최소화, 사고 발생 위험을 제거하는 시설 보수 등을 포함한다. 이와 관련, ‘장애 없는(barrier-free)개념’과 더불어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주목받고 있다. 유니버설디자인은 ‘보편적인 디자인’이란 의미로, 연령이나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개념이다.

구체적으론 집은 에너지 절약형으로 변경하고, 휠체어를 타고서도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주방을 개조하며, 낙상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화장실과 욕조를 안전한 공간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화장실에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지지대를 설치하고, 욕조가 아닌 휠체어를 타고 샤워를 할 수 있는 샤워 부스도 만든다. 휠체어 이동이 편하도록 문턱을 제거해야 하고 현관과 정원 사이에 계단도 없애야 한다.

내 집에 거주하면서 AIP를 구현하기 위해선 70세를 전후해 집에 대한 리모델링이 필수적이다.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