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화장실 없는 비닐하우스, 곰팡이 가득한 단칸방…이 아이가 사는 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경기도 북부 한 농촌에서 사는 A씨는 비닐하우스 1개를 집으로 만들어 살고 있다. 고2 아들과 중3 딸은 2012년부터 3년 간 빌라에 산 것을 빼곤 평생 비닐하우스에서 살았다. 최정동 기자

경기도 북부 한 농촌에서 사는 A씨는 비닐하우스 1개를 집으로 만들어 살고 있다. 고2 아들과 중3 딸은 2012년부터 3년 간 빌라에 산 것을 빼곤 평생 비닐하우스에서 살았다. 최정동 기자

#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7일 경기도 북부지역의 한 농촌 마을. 자동차가 다니기도 힘든 좁은 비포장길을 따라 한참 걸어가니 농사용 비닐하우스 10개 동이 보였다. 이 가운데 검은 천을 씌운 하우스 한 개 동은 A씨(54) 가족 4명이 사는 집이었다. 하우스 출입구에는 빗물이 들어찼다. 부엌 바닥은 맨땅이고, 방 2개는 조립식 패널로 꾸몄다. 재래식 화장실은 집과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A씨의 딸(15)은 가족 외에 다른 사람과는 말을 하지 않았다. A씨는 “아홉살 때 친구들에게 이런 집에 산다고 놀림을 당한 뒤 그렇게 됐다”고 했다. 자녀는 1시간마다 다니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닌다. 돈이 없을 때는 9km 거리를 걸어온 적도 있다고 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들(18)은 “집에 인터넷이 안 되는 게 제일 불편하다”며 “저녁엔 동생과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폭염·장마에 위험한 아동 주거빈곤 #농촌 아동, 놀이터·도서관 없이 고립 #단칸방에 네 식구 함께 자는 도시 아동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주거권 활동

# 서울 남부지역 지자체의 한 달동네 주택 단칸방. 이곳엔 시각장애인 여성 B씨(41)와 지적장애가 있는 세 딸 등 네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작은 방엔 창문이 없어 환기하려면 현관문을 열어야 했다. 오래된 에어컨이 있지만, 전기요금 걱정에 틀지 않아 방 안은 후덥지근했다. 모기·바퀴벌레도 많았다. B씨는 남편의 폭력때문에 세 딸과 함께 여러 해 동안 진주·파주 등의 쉼터를 떠돌기도 했다.

이들 집은 모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원하는 아동 주거 빈곤 가구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19세 이하 아동 10명 중 1명꼴인 94만4000명이 이와 비슷한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아동 주거 빈곤 유형은 세 가지로 나뉜다.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1인당 사용 면적이 낮거나 부엌·화장실 등이 없는 집) ▶지하와 옥탑 ▶비닐하우스·컨테이너 등(비주택)에서 사는 집 등이다.

A씨 집 내부엔 화장실이 없어, 50m 정도 떨어진 곳에 간이용 재래식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A씨 아들이 우산을 쓰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모습. 최정동‧김나현 기자

A씨 집 내부엔 화장실이 없어, 50m 정도 떨어진 곳에 간이용 재래식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A씨 아들이 우산을 쓰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모습. 최정동‧김나현 기자

생활 방식 면에선 A씨 집 같은 농촌형 주거 빈곤과 B씨 집 같은 도시형 주거 빈곤으로 나뉜다. 도시형은 다가구 주택을 잘게 쪼갠 집에 서너명 식구가 부대끼며 사는 식이다. 햇볕이 잘 들지 않고 환기가 되지 않아 감기‧천식 등 호흡기 질환과 아토피 등 피부 질환을 앓는 사람이 많다. 농촌형은 대개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형태라 비교적 공간은 넓지만, 화장실 등 생활 필수 시설이 열악하다. 이곳 아동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고립감이다. 주로 주거비가 저렴한 지역이다 보니 또래가 잘 없고 놀이터·도서관 등도 턱없이 부족하다.

주거 빈곤 아동, 호흡기 질환 많고 분노·우울감 높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2017년부터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아동 주거 빈곤실태를 연구하며 아동 주거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빈곤 상태에 놓인 상당수 아이는 육체적인 건강 문제뿐 아니라 우울감·분노·과잉행동 등 심리적 문제도 안고 있다고 한다.

주거 빈곤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집을 고치거나 월세와 보증금 등 주거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초록우산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총 아동 5975명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월세, 보증금 등으로 85억원을 지원해왔다. 이보다 장기적인 대안은 아이를 키우는 저소득층이 공공임대 주택에 더 쉽게 입주하게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난 3월 경기도는 주거기본조례에 아동 주거빈곤 개념을 새로 도입해, 주택 개조 사업을 진행 중이다.

농촌 지역엔 개별화된 지원 필요 

하지만 아동 주거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는 많다. 어린이재단과 함께 이 주제를 연구 중인 서울사이버대학교 임세희 교수는 “공공임대 주택 같은 정부의 아파트 건설 정책으론 농촌 문제까지 해결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평생 농사만 지어 온 이들에게 생계 조건, 인식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아파트 이주를 권해도 소용없는 경우가 많다. 월세를 부담할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경제 활동을 못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북부아동옹호센터 전성호 소장도 “농촌 주거 빈곤은 지자체가 나서 빈집을 사 리모델링해 지원하는 등 개별적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농촌형 주거 빈곤 아동은 소득·주거·지역 빈곤이라는 삼중고를 겪는데, 그 수가 적어 더더욱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린다”며 “면밀한 실태 조사를 통해 문화 시설과 셔틀버스를 도입하는 등 촘촘한 복지 서비스가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na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