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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질해대는 만취환자 정상진료 못했다. 의사 책임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26)

술에 취하면 다치기 쉽다.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얼굴이 찢기거나. 때로는 뇌출혈로 죽기도 한다. 심지어 응급실 진료를 받았음에도. 의사는 대체 뭘 한 걸까?

주취자의 진료는 어렵다. 힘든 건 둘째치고 어렵다. 문자 그대로다. 학창 시절 풀지 못한 수학 문제처럼 어렵다. 뭐부터 검사해야 할지 막막하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환자가 술에 취한 행동을 보이면 의사는 직감한다.
“아 이 문제, 쉽게 풀릴 리 없겠구나!”

술에 취한 환자를 진료하는 건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어렵다. 뭐부터 검사해야 할지 막막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진 pixabay]

술에 취한 환자를 진료하는 건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어렵다. 뭐부터 검사해야 할지 막막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진 pixabay]

의사가 환자를 볼 때 무작정 A부터 Z까지 모든 검사를 하지 않는다. 시간과 돈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가리지 않고 검사를 남발하면 병원비 때문에 집을 팔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결과를 받을 즈음엔 이미 늙어서 묘에 묻혀있을 테고.

술 취한 환자는 문진·검진 무용지물 

의사의 진료는 문진과 신체 검진으로 시작된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듣고 몸의 여기저기를 살펴서, 가능성 높은 질병 몇 개를 추려낸다. 의심의 범주를 좁힌 후 정밀검사로 질병을 확정 짓는 것이다.

술 취한 환자에겐 첫 번째 단계, 문진과 신체 검진이 무용지물이다. 뭘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을 얻기 힘들다.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 검사해야 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아득히 펼쳐진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기분이랄까. 어렵게 검사를 결정지어도 난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술에 취한 사람은 검사를 하기 위해 기계로 데려가는 것부터 쉽지 않다. 술 취한 사람을 상대해봤으면 알 것이다. CT만 찍으려 해도 수십초간 꼼짝 않고 있어야 하는데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사진 pixabay]

술에 취한 사람은 검사를 하기 위해 기계로 데려가는 것부터 쉽지 않다. 술 취한 사람을 상대해봤으면 알 것이다. CT만 찍으려 해도 수십초간 꼼짝 않고 있어야 하는데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사진 pixabay]

검사를 실행하는 것도 문제다. 두부 CT만 찍으려 해도 환자는 수십초간 꼼짝 않고 있어야 한다. 조금만 흔들려도 영상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술 취한 사람이 가만있으라는 지시를 들을 턱이 있나. 애시당초 기계로 환자를 데려가기부터 쉽지 않다. 술 취한 사람을 상대해봤으면 알 것이다. 제자리에 가만두는 것도 힘든데, 어디론가 끌고 가서 좁은 통에 몸을 눕히게 한다?

결국 주취자의 종착역은 수면진정제다. 약을 써서 움직임을 없앤 뒤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검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약물투여의 리스크가 생겨난다. 가장 큰 위험은 약 때문에 호흡이 멈춰 사망하는 것이다. 그 유명한 프로포폴이 이럴 때 쓰는 약물이다.

만취 상태는 그 자체로 기도관리가 안 되고, 진정이 깊으며 흡인의 위험이 크다. 약물을 투여한 후 이상 반응을 관찰하기도 어렵다. 술에 취한 건지 부작용이 나는 건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뭔가 이상이 생겨도 본인이 자각하지 못한다. 죽기 직전까지 고통을 표현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술 취한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문진과 신체 검진이 안 돼 확신이 들지 않는다. 검사를 해보면 좋겠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사진 pxhere]

술 취한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문진과 신체 검진이 안 돼 확신이 들지 않는다. 검사를 해보면 좋겠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사진 pxhere]

술 취한 환자가 응급실에 왔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심증은 있지만, 문진과 신체 검진이 안 돼 확신이 들지 않는다. 검사를 해보면 좋겠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호흡 정지로 사망하거나 인공호흡기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심지어 검사 결과에 아무 이상이 안 나오면? 뒤는 끔찍하다. 생각해보라. 술에서 깨보니 내 몸에 인공호흡기가 달려있고 병원비가 수백만 원 나와 있다면 “그냥 술 한번 마셨을 뿐인데”하며 절로 욕이 나올 것이다.

“돌팔이 새끼들이!” 전공의 때 굉장히 폭력적인 주취자가 있었다. 손만 닿으면 사람들에게 발길질했다. 의료진이 들어가는 족족 맞고 나오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혈압조차 잴 수 없었다. 우리는 결국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발길질할 기운이 있는걸 보니 아픈 덴 없겠구나 싶었다.

응급실에 온 만취자에게 진료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진정이 되어 집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퇴원 지시를 하기 전에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복강 내 출혈이었다. [사진 pxhere]

응급실에 온 만취자에게 진료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진정이 되어 집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퇴원 지시를 하기 전에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복강 내 출혈이었다. [사진 pxhere]

폭력적인 만취자, 진료 시도 무산   
그 뒤로도 한나절 넘게 우리는 진료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는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진정됐다. 드디어 집에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퇴원 지시를 하기 전에 차트를 마무리해야 했다. 하지만 검사한 게 없어서 쓸 말이 없었다. 뭐라도 하나 해야만 했다. 가장 간단히 할 수 있는 초음파를 택했다. 하지만 환자 배에 무심하게 올린 기계에는 선명한 검은 액체가 출렁이고 있었다. 복강 내 출혈이었다.

눈을 비비고 몇 번을 다시 봤고, 눈물을 글썽이며 담당 교수를 불렀다. 영상을 확인한 모두가 사색이 됐다. 몸싸움해서라도 제압했어야 했고, 숨이 막혀 죽더라도 약으로 재웠어야 했다. 어떻게든 검사를 진행했어야만 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진작에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는 책임은 온전히 덮어써야 할 시간이다. 환자는 수술이 결정됐다. 보호자에게 소식을 전해야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성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죄인이 따로 없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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