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금융SOS] “분유값 뺏다니” 빚 독촉보다 무서운 통장압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통장이 압류돼 당장 분유 살 돈도 없어요.”

법원에 압류금지채권 신청하면 #월 185만원까지 생계비는 보호 #‘행복지킴이 통장’ 만드는 게 안전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김모(36·서울 마포구)씨는 눈앞이 캄캄하다. 5년 전 아버지의 사업 실패 이후 대부업체에서 빌린 1400만원이 불어나 2000만원이 됐다. 지난해 임신한 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면서 이자를 제때 못 갚은 탓이다.

장기 연체자가 되자 법원에서 채권 압류 통지서가 날아왔다. 곧바로 전 재산 200만원을 넣어둔 통장이 압류됐다. 김씨는 “빚 독촉 전화보다 분유 살 돈이 없다는 게 더 무섭다”며 “다음 달부터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기로 했는데 이마저 압류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채무자가 빚이 많아도 재산을 모조리 압류할 수는 없다. 기본 생계를 유지하도록 한 달 생계비는 ‘압류금지채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현재 압류가 금지된 최저 생계비는 월 185만원이다. 채무자가 보유한 전체 은행 계좌의 잔액이 185만원에 못 미친다면 채권자가 압류할 수 없다는 얘기다.

법원에 압류금지채권 범위변경을 신청하면 통장 압류를 풀 수 있다. 압류가 금지된 범위의 금액에 한해서 압류를 풀어달라는 소송이다. 이때 생계형 예금임을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박정만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장(변호사)은 “채무자 상당수가 압류금지채권을 아예 모르거나 신청 방법을 어려워한다”며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로 상담이나 소송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압류금지채권에는 생계형 예금뿐 아니라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아동수당 등도 포함된다. 법적으로 공무원연금이나 국민연금도 압류할 수 없다.

보험은 어떨까. 박현진 미래에셋대우 VIP컨설팅팀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채권자는 채무자의 보험금을 압류할 수 있지만 보장성 보험금 중 사고나 질병 치료에 쓰이는 비용은 제외된다”며 “대표적으로 실손의료보험이 해당되고 사망보험금도 1000만원까지는 압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임대차보증금도 일정 범위 내에서 압류가 금지된다. 소액임차인은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도 보증금 일부는 돌려받을 수 있는 ‘소액보증금 우선변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우선변제권이 인정되는 임대차 보증금은 압류할 수 없는 재산으로 분류돼 있다. 서울의 경우 압류할 수 없는 임대차보증금은 3700만원으로, 임대차 보증금이 1억1000만원 이하인 소액임차인에 한해서다.

다만 범위변경 신청은 한계가 있다. 박 센터장은 “다른 채권자가 (계좌를) 압류하면 다시 범위 변경 신청을 해야 한다”며 “두세 번 신청할 수 있지만, 소송 기간이나 비용이 부담”이라고 말한다.

이런 부담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싱글맘인 김씨처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면 압류방지 통장(행복 지킴이 통장)을 만드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기초생활수급비 등이 일반 통장의 다른 돈과 섞여 압류된 탓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다중채무자가 늘자 정부가 2011년 도입했다. 기초생활수급비는 물론 기초연금과 장애수당, 한부모가족 복지급여, 아동수당 등도 행복 지킴이 통장으로 받을 수 있다.

통장을 만들기도 쉽다. 은행에 복지급여수급 증명서를 제출하면 통장을 개설할 수 있다. 이후 관할 시·군구청에 통장 사본과 함께 신청서를 내면 행복 지킴이 통장으로 복지 급여가 들어와 압류를 막을 수 있다. 출금만 할 수 있고 입금할 수는 없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