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이 2달 폭염 버티라고?" AS 받으려다 화병난다

중앙일보

입력

서울 종로구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A씨는 최근 두 달 동안 손님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2년 전 방에 설치한 에어컨이 지난 5월부터 미적지근한 바람만 내뿜어 수리를 의뢰했는데 고치기까지 두 달이 걸렸기 때문이다. 제조사 서비스센터에서 온 수리기사는 처음에 “냉매 가스가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약 6만원을 들여 냉매를 보충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이후에도 고장이 반복돼 4번이나 수리기사가 더 왔다. 그때마다 원인은 냉매→배관→콤프레셔(압축기) 문제 등으로 바뀌었지만 해결이 안 됐다. 급기야 수리에 필요한 핵심부품도 수급이 안 돼 기다려야 했다. A씨는 화가 나 서비스센터에 민원을 넣었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다. 본사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결국 A씨는 한 언론사에 이를 제보했고, 언론의 취재가 들어가고 난 이후인 지난달 말에서야 수리를 받을 수 있었다.

A씨는 “에어컨을 수리하는 데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마치 내가 무슨 진상 민원인이 된 것 같은 취급을 받아서 다음부터는 사설 수리업체를 이용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몰랐던 설치비에 늦장 AS에…"쪄죽겠다"

무더위에 에어컨 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AS는 이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무더위에 에어컨 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AS는 이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가정주부 심모씨도 지난달 초 온라인에서 한 대기업 제조사 에어컨을 구매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구매 당시엔 몰랐던 설치비 30만원까지 부담했지만 에어컨은 한 달도 안 돼 고장이 났다. 제조사 서비스센터에서는 “설치업체가 배관을 잘못 설치한 것 같으니 설치업체에 문의하라”고 했다. 이후 그는 설치 기사를 불러 항의했지만 “정확한 고장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설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2주간 무더위에 허덕이던 심씨는 결국 소비자원에 제조사와 설치업체를 모두 고발했다. 심씨는 “비싼 에어컨 기깃값과 수십만원 상당의 설치비를 부담했는데도 정작 고장 나니 서로 책임을 미루기 바쁜 모습에 화가 난다”며 “이 폭염에 가족들의 건강이 걱정된다. 이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에어컨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국민청원도 

40도에 가까운 폭염에도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이로 인한 소비자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뉴스1]

40도에 가까운 폭염에도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이로 인한 소비자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뉴스1]

에어컨 고장과 관련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급증하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에어컨 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그만큼 늘어난 고장에 대해 애프터서비스(AS)가 따라오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에어컨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2015년 127건에서 2016년 210건, 2017년 327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 중에서도 설치상 과실과 설치비 과다 청구 등 ‘설치’ 관련 불만이 60%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제조사 AS센터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설치업체는 에어컨 제조업체 소속이 아니라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통상 제조업체의 공식 판매점에서 에어컨을 구매하면 소속 직원들이 직접 설치까지 해주지만,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살 경우 사설 설치업체에서 파견된 기사가 온다.

이 때문에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에어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구매할 때는 AS를 보장하면서 판매만 하고 난 뒤에는 AS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 글까지 등장했다. 앞서 A씨 사례처럼 제조사 정식 AS센터를 이용해도 기사 인력 부족으로 수리가 지연되거나 대부분 하청업체인 협력사와 본사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부품 수급 등이 늦어질 수 있다.

일부 에어컨 제조업체는 소비자 불만이 끊이지 않자 자가점검 및 사전점검 서비스를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려면 에어컨 구매 시 계약조건과 설치비 등을 꼼꼼히 확인하고, 설치 후에도 즉시 정상작동 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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