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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빗물펌프장 참사, 75개월간 안전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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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상재 복지행정팀 기자

이상재 복지행정팀 기자

지난달 31일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양천구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 참사는 애초에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고라 더 안타깝다. 안전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당초 공사 일정대로라면 지금쯤 온전히 가동되고 있어야 할 시설이어서다.

신월빗물터널 공사의 발단은 2010년 9월 서울을 강타한 물 폭탄이었다. 양천·강서구에 300㎜가 넘는 집중 호우가 쏟아져 건물 6000여 채가 잠겼다.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이 빗물터널이다. 강서구 화곡동에서 신월동을 거쳐 목동 빗물펌프장까지 3.6㎞ 구간에 지하 50m, 지름 5.5~10m의 대심도 빗물저류시설(터널) 건설을 결정했다. 폭우 때 최대 32만t의 빗물을 받아들였다가 안양천을 통해 한강으로 내보내는 구조다.

현대건설이 설계와 시공을 맡는 턴키로 수주해 2013년 5월 착공했다. 처음엔 2015년 말 완공 예정이었다. 지금은 올 연말까지 연장된 상태다. 하지만 이번 사고 후 공사중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라 이마저도 어려워 보인다.

불과 27개월 예정이던 공사기간이 75개월로 늘어난 것은 주로 ‘기능’ 논란 때문이었다. 사업비 1380억원이 들어가는 대형 공사인 데다, 국내 최초로 건설되는 빗물터널이 자칫 제 역할을 못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에 따른 것이다. 전체 구간을 50분의 1짜리 축소 모형으로 만들어 터널 내 물 흐름을 시뮬레이션했다. 터널 단면을 7.5m에서 10m 확대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서울시와 현대건설은 공사비를 놓고도 줄다리기를 했다. 결국 3년을 끌며 대한상사중재원에 가서야 문제를 봉합했다. 지름이 10m로 확대돼 저류량이 18만→32만t으로 늘어나는 만큼 펌프설비를 덜 들여놔도 되니 공사비 상승요인을 벌충한다는 것이었다. 최근엔 운영기관인 양천구청에서 차량 운반설비인 카리프트 공사를 요청해 공기가 늦춰졌다.

기능 논쟁도, 추가 발주도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설계를 보완·변경하는 일도 자연스럽다. 문제는 첫 단추를 끼우는 과정이었다. 토목·환경공학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기능에 대한 갑론을박과 사업 주체의 주판알 튕기기만 보인다는 얘기다. 안전 이슈는 늘 뒷전이거나 형식에 그쳤다. 비상대피시설 마련이니, 안전장비 확보니, 비상통신수단 구축이니… 지금 모두 문제 되는 사안들이다.

애초에 안전 시스템이 비중 있게 설계되고 구축, 운영되도록 강제해야 한다. 대형 인프라, 특히 지하공간처럼 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사업을 할 때는 더 엄격한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 “바보야. 처음부터 문제는 ‘안전’이야”라고 끊임없이 외쳐야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이상재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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