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용기의표준이야기

장마와 습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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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리의 몸은 늘 변화하는 날씨 환경에 노출돼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 몸은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을 한다. 우리 몸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다. 첫째는 몸 안에서 열을 발생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주위로부터 열을 받아들이며, 그리고 셋째는 주위에 열을 방출하는 방법이다. 우리 몸은 이러한 방법을 적절히 조합해 가능하면 쾌적한 상태에 있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날씨가 추워지면 몸을 떨게 되는데, 이는 근육의 활동을 증가시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함으로써 몸 안에서 열을 발생시키기 위한 반응이다. 더울 때에 땀을 흘리는 것은 땀이 증발할 때 피부로부터 열을 빼앗아 감으로써 열 방출을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다. 또한 겨울철에는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손과 발 등에 혈액 공급을 줄이고, 여름철엔 반대로 열 방출을 늘리기 위해 이 부분에 혈액 공급을 늘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 몸이 쾌적함을 느끼는 데는 기온.습도.바람의 속도 등이 영향을 미친다. 기온이 가장 중요하지만 습도 또한 중요하다. 장마철처럼 습도가 높으면 피부로부터의 증발에 의한 열 방출이 덜 되기 때문에 우리는 더 덥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온이 섭씨 20~24도, 습도가 40~60% 사이일 때 쾌적함을 느낀다.

습도란 공기 중에 포함돼 있는 수증기의 양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습도는 상대습도인데, 같은 온도의 공기가 최대로 함유할 수 있는 수증기의 양에 비해 얼마나 많은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는지를 %로 말하는 것이다. 습도 측정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모발습도계다. 머리카락은 공기 중의 상대 습도에 따라 최고 2.5~3% 정도까지 길이의 변화가 생긴다. 습기에 민감한 이런 성질을 이용해 공기 중의 상대 습도를 측정하는 습도계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모발습도계는 어떤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야 할까. 모발습도계를 만드는 머리카락에도 표준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미 군규격에 의하면 모발습도계에 쓰이는 머리카락은 '노르웨이 여성의 천연적인 금발'이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다 사용될 수 있으며 요즘 사용되는 모발습도계에는 사람의 머리카락뿐 아니라 말의 갈기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폴리머 섬유도 사용되고 있다. 이보다 정확한 습도 측정을 위해서는 건습구 습도계가 많이 쓰이고 있으며 정밀한 습도의 표준을 위해서는 이슬점 습도계를 사용한다.

장마철의 높은 습도는 우리의 생활환경을 쾌적하지 못하게 만들 뿐 아니라 여러 산업에서도 경계하는 대상이다. 전자산업.제약회사.식품제조업 등의 불량률을 높이기도 하며, 교량이나 철 구조물 부식의 원인이 돼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습도는 라식 수술의 성공률에도 영향을 미친다. 습도가 높아지면 각막은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게 된다. 이 경우 건조한 각막 수술에 사용하던 동일한 에너지의 레이저를 사용하게 되면 각막이 덜 깎이게 된다. 비록 수술실의 실내 습도를 적정 수준으로 엄격히 조절한다 해도 외부 환경에 적응돼 있는 환자의 각막이 바로 수술실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보고에 따르면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 수술한 환자의 경우 다시 교정수술을 하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높은 습도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낮은 습도에서는 코나 점막이 건조하게 돼 감기에 걸리기 쉬우며, 정전기 발생이 많아져 생활에 불편할 뿐 아니라 피부를 자극해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적절한 습도란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중용의 지혜와 통하는 것인가 보다.

◆약력=미국 노스웨스턴대 박사, 충남대 공과대 겸임 부교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책연구실장, 한국초전도학회 부회장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신호계측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