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지구에서 식민행성으로 향하는 호화 우주여객선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패신저스’. 홈스테드2 행성으로 비행 중인 우주선에는 기기 오작동으로 먼저 깨어난 두 남여를 빼면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운동을 하는 일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자판기형 AI가 음식을 조리하고, 서빙은 로봇이 대신한다. 울적한 기분에 찾은 바에는 인간의 모습을 닮은 로봇 바텐더가 기분을 달래는 농담과 함께 멋진 칵테일을 만들어 건넨다. 먼 미래로 여겨졌던 이러한 일들이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왔다. 로봇이 커피를 내리고, 음식을 나른다. 그리고 의약품과 피자를 배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서소문사진관]
강남 테헤란로 N타워에 입점한 '라운지엑스'에 가면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바리스타를 만날 수 있다. 덴마크의 글로벌 기업인 유니버설 로봇을 기반으로 라운지랩이 기획 및 디자인한 로봇 바리스타 '바리스'다.
지난달 25일 이 특별한 바리스타를 만나기 위해 강남 N타워를 찾았다. 라운지엑스는 블록체인, 인공지능, 자율주행 로봇 등 기술협력을 통해 미래 기술이 적용된 퓨처 레스토랑들이 모여있는 레귤러식스 매장 중 하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자 열심히 커피를 내리고 있는 '바리스'가 가장 먼저 보였다. 개방된 공간에 위치해 있어 카페를 찾은 고객들은 주전자를 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바리스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기존 로봇 바리스타는 커피머신으로 만든 음료를 로봇팔을 이용해 고객에게 건네는 수준이었다면, 바리스는 분쇄된 원두 위에 주전자로 물줄기를 내려 진짜 '드립'을 한다. 바리스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에티오피아 모모라 내추럴 G1, 파나마 래리다 게이샤 워시드, 인도네시아 골리앗 롱 베리 등 3가지 '로봇 드립'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가격은 5000~8000원 선으로 일반 드립 커피와 비슷한 수준이다.
커피를 주문 받은 직원이 버튼 몇 개를 누르자 바리스의 로봇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리스'는 미리 갈아놓은 원두를 드리퍼에 붓고, 분쇄된 원두 윗부분이 수평이 되도록 좌우로 흔들었다. 그다음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를 들어 작은 원형을 그리며 드립을 했다. 바리스는 숙련된 바리스타들의 프로 파일이 입력돼 있어 각각의 원두의 맛을 살리는 최적의 방식으로 물줄기를 흘려 보냈다. 원두 특유의 향을 살리기 위해 처음엔 얇은 물줄기로, 드립이 끝날 무렵엔 원두의 잡맛을 없애고 깔끔한 맛을 살리기 위해 굵은 물줄기를 사용한다. 바리스타들이 '뜸 들이기'라고 부르는 원두의 불림을 위해 드립을 잠시 멈추고 기다리기도 했다. 바리스는 물의 세기, 온도, 물의 양 등을 섬세하게 조정해, 사람이 만드는 것보다 일관되고 균일한 맛의 커피를 만들어냈다.
라운지엑스의 총괄 로스터 김동진 씨는 "매장을 찾은 고객 중 하루 평균 50~100여명이 '바리스'가 내리는 로봇 드립 커피를 찾는다"고 말했다. 또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되는 핸드드립을 바리스가 맡아주는 대신 매장의 직원들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라운지엑스는 현재 3가지인 로봇 드립 메뉴를 더 늘려나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바리스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머리에 쟁반을 얹은 서빙 로봇 '팡셔틀'은 매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고객들에게 빵과 디저트를 배달하고 있었다.
팡셔틀은 카페직원이 태블릿을 통해 좌석 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테이블로 서빙한다. 서빙을 완료하면 원래 위치로 복귀한다. 자동주행 시스템이 내장돼 있어 이동 중 사람이나 장애물이 출현하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잠시 멈췄다 움직이기도 했다. 고객들에게 서빙을 할 때는 "팡셔틀입니다. 쿠키 맛있게 드세요 ”와 같은 간단한 인사말도 건넨다. 팡셔틀은 카푸치노처럼 잔을 가득 채우는 음료 등은 이동 중 쏟아질 우려가 있어 아직은 빵만 서빙하고 있다.
'팡셔틀'은 미국의 실리콘밸리 로봇 기술 기업 베어 로보틱스에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2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난 2017년부터 개발한 '딜리 플레이트'와 같은 모델이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4월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일본의 로봇 개발사 ZMP가 만든 자율주행 로봇 ‘캐리로’를 통해 실외 배달을 시범 운영하기도 했다.
지난 23일 서울 송파구에 오픈한 미래식당 '메리고키친'에는 팡셔틀의 '친구' 로봇도 있다.
선반 형태의 이 자율 주행 로봇은 한 번에 최대 4개 테이블에 서빙이 가능하다. 로봇 상단에 위치한 화면을 통해 몇 번째 선반의 음식이 내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음식을 수령한 후 확인 버튼을 클릭하면 서빙이 완료된다. 창가 쪽에는 설치된 모노레일을 타고 움직이는 두 대의 로봇들도 음식 서빙을 돕는다. 우아한 형제들이 기술 지원을 한 이곳에서는 QR코드로 식사를 주문하고, 배달의 민족 앱으로 결제한다.
호주에서는 드론 배송이 시행되고 있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의 자회사인 윙은 지난 4월부터 캔버라 인근 5개 지역의 1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식료품과 의약품 등 가벼운 제품들을 배달한다.
무인배송 스타트업 기업 '누로'는 미국에서 이미 지난해 자율 주행 배송 테스트를 실시 중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국내 피자 체인점 도미노 피자도 미국 휴스턴에서 누로와 협력해 자율주행 피자 배달 테스트를 할 예정이다.
자동차 기업 포드는 걸어다니는 배송로봇 ‘디지트’를 이 선보였다. 이 로봇은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최대 18kg 중량의 물품을 배송할 수 있다. 장애물을 인식하는 카메라와 라이더(LiDAR) 센서를 장착, 장애물과 계단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옥스퍼드대학의 칼 프레이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는 2013년 보고서를 통해 ‘20년 안에 수많은 전문직종의 자리를 로봇과 AI가 대신할 것’이라고 미래를 전망했다. 로봇과 AI들이 일하는 미래 시대는 이미 한 걸음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우상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