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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에코파일] ‘맥가이버 칼’로 피 빨고…70만명 목숨 뺏는 흡혈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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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구 상에는 모두 3500종의 모기가 있다. 암컷 모기는 피를 빨아먹는 과정에서 말라리아 같은 질병을 옮겨 사람의 건강을 위협한다. [중앙포토]

지구 상에는 모두 3500종의 모기가 있다. 암컷 모기는 피를 빨아먹는 과정에서 말라리아 같은 질병을 옮겨 사람의 건강을 위협한다. [중앙포토]

장마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장마가 끝나면 모기들이 극성을 부릴 전망이다. 모기는 전 세계에서 매년 7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위협적인 동물이다. 일본뇌염·말라리아·뎅기열·황열병 등 여러 질병을 옮기기 때문이다. 모기가 지구 상에 나타난 것은 2억2600만 년 전이고, 모기와 전쟁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사람 피 빠는 모기 전세계 200종 #30m 거리에서도 사람 냄새 맡아 #유전자변형 연구로 종 박멸 시도 #온난화로 서식 범위 넓어지기도 #폭우 땐 유충 떠내려가 숫자 줄어

모기 암컷이라고 해서 사람 피만 먹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당분도 섭취해야 한다. 사람의 피를 먹는 것은 알을 발달시키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얻기 위해서다. 지구 상에는 3500여 종의 모기가 있는데, 사람의 피를 선호하는 종은 200종 정도다.

모기는 먹잇감인 사람을 찾아낼 때 사람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냄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기는 30m 떨어진 곳에서도 사람 냄새를 찾아낸다. 모기의 더듬이와 코에는 150여개의 냄새 수용체가 있다.

암컷 모기의 입은 여섯 가지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1쌍의 큰턱과 1쌍의 작은턱, 1개의 윗입술과 1개의 아래인두 등이 마치 스위스 군용 칼(맥가이버 칼)처럼 모여 있다. 모기는 이들 기관을 송곳처럼 사용해 사람의 피부를 뚫기도 하고, 면도날처럼 사용해 베기도 한다. 톱으로, 지렛대로, 피부를 잡는 집게로도 활용한다.

2013년 부산 수영강체육공원에서 모기퇴치 미꾸라지 방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3년 부산 수영강체육공원에서 모기퇴치 미꾸라지 방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사람들은 모기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풀이나 짚을 태우는 모깃불을 피우는 것도 오래된 방법이다. 알을 낳는 웅덩이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웅덩이에 미꾸라지 등을 풀어 유충을 잡아먹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살충제와 함께  디에틸톨루아미드(DEET)나 피카리딘, 유칼립투스 기름 등 다양한 기피제도 사용된다.

지난해 3월 국제학술지 ‘랜싯 감염병’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이버멕틴(ivermectin)이란 기생충 치료제가 모기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이버멕틴 주사를 맞은 사람의 피를 말라리아모기가 마시면 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주사하는 양의 3배 정도는 돼야 효과가 있는 데다 해당 기생충이 없는 지역에서 일부러 주사제를 맞는 것도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하지만 의외로 아주 간편하게 모기를 쫓을 수 있다. 바로 모기가 주변에서 앵앵거리면 팔을 휘젓거나 찰싹 손뼉을 쳐서 모기를 쫓으면 된다. 모기는 사람의 체취를 맡고 접근하지만 동시에 공기의 진동은 싫어한다. 지난해 1월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미국 워싱턴 대학의 제프 리펠 박사는 “모기는 공기 진동과 특정한 개인의 체취와 연결해 기억하는데, 진동을 느낀 모기는 그 냄새에 불편해지고 그 냄새를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모기는 냄새와 진동을 연결한 기억을 24시간 동안 유지한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 소속 연구원들이 포획 된 모기를 종류별로 분류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 소속 연구원들이 포획 된 모기를 종류별로 분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전자를 변형시켜 모기를 제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른바 GM(Genetically Modified) 모기다. 옥시텍(Oxitec)이란 영국 생명공학 회사는 뎅기열을 옮기는 모기(Aedes aegypti)의 수컷 유전자를 조작, 정상적인 암컷과 교배하면 알에서 부화한 모기 유충들이 조기에 사망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옥시텍은 이 GM 수컷 모기를 말레이시아·브라질 등에 방사했다.

최근에는 유전자 가위(CRISPR)라는 더욱 발달한 기술도 활용된다. 올해 초 이탈리아 연구팀은 암컷 모기를 수컷 비슷하게 만드는, 일종의 ‘자웅동체’ 같은 모기를 만들어 냈다. 암컷 모기의 입을 수컷 모기 입처럼 만들어 피를 못 빨게 만들고, 결국 알을 낳지 못하게 만들었다. 부모 양쪽에서 모두 변형된 유전자를 물려받은 모기는 불임이 되고, 한쪽에서만 변형된 유전자를 물려받은 경우는 일부 후손에게 변형된 유전자를 전달한다. 이런 식으로 7~11세대를 이어가면 결국 정상적인 모기는 사라지게 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하지만 생태계 교란 등의 이유로 GM 모기를 방사하는 데 대한 반대도 많다. 특정 모기 종을 완전히 없애려는 것에 우려하기도 한다. 북극 툰드라에서 모기가 사라진다면 철새의 숫자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하는 목소리도 있다. 모기가 없다면 거미나 다른 곤충이나 도마뱀·개구리 등도 중요한 먹잇감을 잃게 된다. 모기는 꽃가루를 옮겨주는 매개 곤충 역할도 한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해로운 모기 한두 종을 없앤다 하더라도 기존의 종이 차지하고 있던 생태학적 ‘틈새(Niche)’를 다른 모기 종이 차지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지구온난화로 모기의 서식지도 달라지고 있다. 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말라리아모기의 경우 지구온난화로 인해 서식 범위가 넓어진다. 일부에서는 폭염이 극심해지면 모기들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뚜렷한 증거는 없다. 오히려 기온이 상승하면 모기의 생활사 주기가 짧아져 모기가 더 많아질 가능성도 있다.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원 이희일 연구관은 “폭우가 쏟아지면 웅덩이에 있던 모기 알과 유충이 다 떠내려가는 바람에 모기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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