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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매운동 넘어 항일 콘텐트까지…'바이콧(buycott) 코리아'

중앙일보

입력

25일 오후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 벽면에 이 곳을 방문한 시민들이 적어놓은 메시지들이 걸려있다. 권유진 기자

25일 오후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 벽면에 이 곳을 방문한 시민들이 적어놓은 메시지들이 걸려있다. 권유진 기자

“학생들에게 근현대사의 아픔과 일본의 만행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은 전시를 관람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친구들끼리 온 10대 남학생, 20대 딸과 엄마, 그리고 동남아와 유럽에서 온 외국인들까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은 ‘위안부’ 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며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최근 반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이곳을 찾는 발길도 늘었다. 이날 박물관을 찾은 중학교 교사 진모(30)씨는 “학생들에게 좀 더 정확하고 생생하게 알려주기 위해 찾아왔다”며 “학생들에게 나눠주려고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엽서나 배지 등의 물품도 샀다”고 말했다.

항일 콘텐트 크라우드 펀딩도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보이콧 재팬’을 넘어 ‘바이콧(buycott) 코리아’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쓰던 일본 제품 대신 이를 대체할만한 국산 제품을 찾거나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항일 콘텐트’에 지갑을 여는 식이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 '위안부' 역사와 관련한 모금이 여럿 올라와있다. [텀블벅 사이트 캡쳐]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 '위안부' 역사와 관련한 모금이 여럿 올라와있다. [텀블벅 사이트 캡쳐]

크라우드 펀딩(온라인 소액 공모) 플랫폼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도드라진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란 십시일반 투자하는 소비자들이 모여 정해진 목표액을 달성할 경우 해당 콘텐트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플랫폼인 ‘텀블벅’에는 항일 관련 모금이 다수 올라와 있다. 그중 영화 ‘김복동’ 응원시사회는 지난 17일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해 이틀 만에 목표금액 1000만원을 모두 모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면서 여성 인권운동가로 헌신한 김복동 할머니의 생애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제작진이 상영 수익 전액을 위안부 관련 단체에 기부할 의사를 밝히면서 더욱 관심을 받았다.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일본 극우 세력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는 영화 ‘주전장’ 개봉 프로젝트도 최근 3000만원의 목표 금액을 돌파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나는 전설이다, 김상옥 의사’ 피규어 제작 프로젝트도 개설과 동시에 목표금액인 250만원을 달성했다. 김상옥 의사는 독립운동가 탄압의 상징이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수백명의 일본 경찰과 대치하다 순국한 인물이다. 제 7차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자 1400차 수요시위에 힘을 보태기 위해 위안부 배지 등을 제작하는 프로젝트인 ‘W1SH 4 OO’도 개설과 동시에 목표액을 달성했다.

국산필기구를 인증하는 인스타그램 게시글 [인스타그램 캡쳐]

국산필기구를 인증하는 인스타그램 게시글 [인스타그램 캡쳐]

이 밖에도 한국 기업인 ‘모나미’의 온라인몰 매출이 5배 이상 증가했고 모나미 스토어 매출도 20%가까이 늘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국산필기구 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일본산 문구 대신 국산 제품을 사용한다는 ‘인증글’이 100건 이상 올라와 있다.

미닝아웃 소비 통해 역사적 가치관 드러내

이런 현상의 바탕에는 2030의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미닝아웃(Meaning out)’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닝아웃은 신념에 따라 소비하는 ‘가치 소비’의 일종으로, 가치를 뜻하는 미닝(Meaning)과 사회적 소수자가 벽장에서 나온다는 의미의 커밍아웃(Coming out)을 합성한 신조어다. 미닝아웃 소비자는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투자하고, 이를 표현하는 소품으로 정체성을 드러낸다. 반면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불매 운동을 벌인다.

‘보이콧 재팬, 바이콧 코리아’도 이 연장으로 볼 수 있다. 소비와 투자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식이 강한 젊은층이 일본산 대신 국산 제품을 소비하며 사회적 의미를 찾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현재의 소비자들은 과거보다 소비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역량이 향상됐다”며 “이들에게 소비는 즐거움과 쾌락을 얻는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 공동체를 지향하는 가치 지향적인 행위”라고 분석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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