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관 승진 인사에 4차례 개입해 특정 공무원을 승진시키려 인사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김승환(66) 전북교육감에게 대법원이 25일 유죄를 확정했다. 관행처럼 이어진 선출직 공무원의 광범위한 인사권에 제동을 건 판결이란 평가가 나왔다.
서기관 승진 인사개입 혐의 "승진자 근무평정 조작"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와 지방공무원법 위반으로 기소된 김 교육감의 상고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선출직 공무원은 일반 범죄의 경우 금고 이상의 형,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일 경우엔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직을 상실한다. 김 교육감은 이번 판결과 상관없이 교육감직을 유지하게 된다.
대법원은 이날 김 교육감의 상고를 기각하며 "김 교육감은 공무원의 근무평정 순위를 조정하는 것이 법령에 반한다는 사정을 알았다"며 "공무원의 인사 과정에 개입해 특정 공무원의 점수를 상향하도록 지시하고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직권남용과 지방공무원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무죄→유죄→유죄, 김승환 "지방자치법 취지 훼손하는 것"
2016년 12월 박근혜 정부 감사원의 고발로 시작된 김 교육감의 직권남용 소송은 지난해 1월 1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하지만 10개월 뒤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고 이날 대법원 선고로 유죄가 확정됐다.
전북대 로스쿨 교수 출신인 김 전 교육감은 지난해 11월 2심에서 패소한 뒤 "판결대로라면 교육감이 4급 승진 인사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인사 실무진이 가져온 것을 사인만 하면 끝난다"며 "단체장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게 현행법상 지방자치법 체계의 입법 취지냐"고 반발했다.
하지만 검찰 측은 "승진 인사 전 사전에 근무평정을 조작해 부당한 인사개입이 명백하다"는 입장이다.
1심 "교육감 인사관여 관행" 2심 "명백한 위법 행위"
1심 재판부(노종찬 부장판사)는 임용권자인 김 교육감이 서기관 승진 인사에 개입해 근무평정 순위가 변경된 것은 법령이 정한 임용권자의 권한을 넘어선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승진자 선정 과정에서 교육감의 의견을 반영해왔던 오랜 관행과 현실적 필요성, 김 교육감의 인사 개입 과정에서 강요가 없었다는 점, 김 교육감의 의견을 반영해 근무평정을 수정한 인사담당자는 지시를 따른 것일 뿐 직권남용의 성립 요소인 '의무에 없는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절차상 근무평정 권한은 김 교육감이 아닌 전북교육청의 행정국장과 부교육감에게 있지만 교육감의 의견을 반영했던 관행을 인정해준 것이다. 당시 김 교육감은 "재판부의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박정제 부장판사)는 1심 재판부의 판결을 파기하고 김 교육감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교육감 인사권 행사에 대한 관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공무원도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며 근무평정을 변경한 인사담당자들이 '의무에 없는 일'을 했기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박 부장판사는 김 교육감이 인사에 개입하기 전인 2013년 1월 '부당한 승진인사 대책을 마련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공문이 전북교육청에 접수됐고 같은해 7월 인천교육감이 근무평정 조작 지시로 검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상황에서 김 교육감이 인사개입의 위법성을 인식했을 것이라 판단했다.
검찰 1년 구형했지만…재판부 "인사청탁·뇌물없어 벌금형"
검찰은 김 교육감에게 1년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하며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2심 재판부는 당시 교육감이 인사권에 개입하는 오랜 관행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라는 점, 김 교육감이 6~7년간 교육감으로 재직하며 인사에 4차례만 개입한 점, 인사 청탁이나 뇌물 등을 받고 인사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가 김 교육감의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오랜 관행'을 김 교육감 양형에 유리한 사유로 참작한 것은 모순이란 지적이 나왔다.
법조계 "사후가 아닌 사전에 개입한 것은 부당"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김 교육감이 근무평정 과정에 개입해 승진 대상자의 점수가 조작된 것은 직권남용의 여지가 짙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올)는 "근무평정이 조작된 점을 봤을 때 부당한 인사개입이 명백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근무평정 결과가 나온 뒤 김 교육감이 점수 후순위자를 승진시키는 것은 인사권 재량의 범위로 보인다"며 "사전에 개입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도 "근무평정 사후에 김 교육감이 인사권을 행사했다면 문제가 없지만 사전에 개입해 평정 점수가 조작된 것은 권한을 벗어나는 행위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임용권자의 인사권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인사권을 제약하는 법원의 판결은 정부 부처와 기업의 인사 현실과 괴리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