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56위'는 축구협 행정력 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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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2일 한국 축구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56위로 발표됐다. 6년6개월 만의 50위권 밖 추락이다.

이 소식을 접한 대한축구협회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아무리 산정 방식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월드컵 본선에 못 오른 데다 어느 모로 보나 한국에 못 미치는 우즈베키스탄(50위)이 한국보다 상위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현실을 둘러본다면 이 랭킹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FIFA 랭킹이 발표되던 즈음 FA(축구협회)컵 16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도권에 내린 폭우로 몇 경기가 연기됐다. 경기 개시 여부는 시작 3시간 전까지 경기 감독관이 결정하고 축구협회가 승인한다. 수원 경기는 연기됐고, 고양 경기는 강행하기로 결정됐다.

그러나 FC 서울과 포항 스틸러스가 오후 8시 맞붙게 돼 있던 서울 경기가 문제였다. 경기 감독관은 오후 5시가 돼서야 경기장에 나타났다. 그 시각 축구협회는 책상에 앉아 경기 강행을 결정한 뒤였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는 뒤늦게 감독관과 양 팀 간에 경기 시작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원정팀이란 부담이 있는 포항은 경기 강행을 주장했고, 홈팀 서울은 관중 동원 등을 감안해 경기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경기 시작을 불과 한 시간 앞둔 오후 7시쯤 '그라운드 사정을 고려해 경기를 연기한다'고 결정됐다. 축구협회가 우왕좌왕하고 구단들의 입장이 맞부딪치는 와중에 비를 맞으면서도 축구장을 찾은 열성 관중만 '물을 먹고' 말았다.

축구협회 기자실에서는 "56위는 축구협회 행정력 순위 아니냐"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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