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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문화참견

“소나무도 공부하려는 듯 고개 숙이는 곳이 한국 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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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그는 “서원이 왜 좋은가”라는 질문에 “서원에 가보면 안다”고 했다. “외국 유명 학자들을 서원으로 안내하면 모두 황홀해 했다. 왜 이렇게 좋은 걸 우리는 잘 몰라볼까 아쉬웠다”고도 덧붙였다. “‘가까이 있는 단복숭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신 똘배 찾으러 온 산을 헤맸구나’라는 퇴계 선생의 말씀이 있다. BTS도 아리랑의 어깨 춤사위, 한류도 ‘대장금’ 같은 전통 사극에 기대어 지금 세계를 황홀하게 하는 것 아닌가. 전통유산 속에 세계유산이 있고, 미래유산이 있다.”

이배용 이사장 9년 노력 결실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성리학 정신, 건축미 인정 받아 #전통 속에서 찾은 미래 유산”

지난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됐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 등 9곳이다. 위원회는 서원이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중국의 성리학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라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2015년에 이은 두 번째 도전에서의 성공. 특히 성리학의 종주국인 중국을 제쳐 눈길을 끌었다.

이번 등재의 주역으로는 단연 이배용(72)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이 꼽힌다. 이화여대 총장을 거쳐 2010년 국가브랜드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서원 살리기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는 “문화강국의 자긍심이 올라가고 관광 효과도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이배용 이사장은 ’우리 서원은 전통과 정신의 힘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삶에 지칠 때 서원에 가보라“고도 했다. 우상조 기자

이배용 이사장은 ’우리 서원은 전통과 정신의 힘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삶에 지칠 때 서원에 가보라“고도 했다. 우상조 기자

중국 대표가 지지 발언을 했다.
“지난 5월 등재 심사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로부터 ‘등재권고’ 판정을 받은 상황인데도 마지막까지 안심을 못 했다. 최후 절차인 총회에서 반대 발언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중국 대표가 ‘한국 서원엔 한국적 특출남이 있다, 건축기법·자연경관과의 조화에서 완전성·진정성이 있다’고 지지 발언을 하자, 의장이 자신 있게 ‘등재’ 봉을 쳤다. 팩트의 승리다. 사실은 지난해 실사를 중국인 건축과 교수가 나와서 했다. 중국과의 차별성을 인정하더라. 문화라는 게 내 눈에 좋으면 남도 좋아하는 거구나,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거구나 새삼 절감했다.”
9년 노력의 결실이다.
“역사학자로서 서원이 한국을 넘어 인류 유산으로 가치를 갖는다는 확신은 꽤 오래됐다. 국가브랜드위원장이 되면서 전통문화 쪽에서 국가의 품격을 브랜드화할 만한 게 뭘까 고민하다 서원과 사찰을 정했다. 전문가들을 모아 보존관리 추진단을 꾸렸다. 지난해 불교 1000년의 문화유산인 산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데 이어, 올해 유교 500년 문화유산 서원이 등재됐다. 자부심을 느낀다.”
한차례 고배를 마셨다.
“심사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이코모스 평가 과정에서 보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와서 자진 철회를 한 거다. 그때 지적 사항 세 가지를 보완했다. 연속유산인 9개 서원의 연계성 논리 보완, 서원 주변 완충 구역 확대 정리, 중국과의 차별성이다. 서원 자체는 유형유산이지만 건축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안에 무형유산(제향), 기록유산(서책이나 목판본)이 포함된다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 서원과의 차별성은 뭘까.
“중국 서원은 제향 기능이 약해, 제향의 조상이 공자님밖에 없다. 반면 우리는 향촌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건립해, 제향의 주인공이 안향(소수서원), 퇴계(도산서원) 등 지역 선현들이다. 중국 서원이 과거시험, 입신출세를 위한 도장이라면 우리 서원은 지역 선현들의 학문과 정신을 계승해서 바른 심성을 닦는, 인격 수양이 우선이다. 또 우리 서원은 목조건물도 수려할 뿐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가 중요하다.”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목조건축이 아름답다. [뉴스1]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목조건축이 아름답다. [뉴스1]

조선 후기 서원은 당쟁의 온상지가 되면서 부침을 겪기도 했다. 대원군 때 서원 철폐 운동이 일어나 600개 서원 중 47개만이 남았다. 그는 “지금도 서원이 600여개인데, 그렇게 때려 부숴도 살아남는 것, 그게 전통의 힘이고 서원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서원이 현대 사회에서 갖는 의미라면.
“성리학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기본으로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아가라는 지침이다. 그렇게 바른 심성을 갖도록 정신 수양하는 곳이 서원이다. 소수서원을 보면 스승의 집무실은 한치 높고, 학생 기숙사는 지붕도 한치 낮고 뒤로 물러나 있다. 스승을 존중하는 마음이 건축 구조에서도 묻어난다. 심지어 서원에선 소나무마저 공부하려는 듯 강학당으로 기울어져 있다. 나무가 말 못한다고 사람이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얘기하는 듯하다. 그런 자연을 보면서 불변의 진리, 정신성, 영혼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서원이다. 이기적이고 각박한 경쟁사회, 디지털 문명 시대에 오히려 더 가치 있다고 본다.”
등재 이후 과제는.
“위원회의 권고대로 보다 체계적인 통합보존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등재된 9개 서원 외에 유수한 서원들을 연계해서 활성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정부의 꾸준한 지원, 기업의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도 서원스테이 등 교육프로그램이 있긴 한데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많이 왔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과거 교육 기관을 미래 교육의 산실로 살려냈으면 한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