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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삼현의 이코노믹스

세계 10대 기업 중 7곳은 오너 경영 통해 회사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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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효율적 경영 가로막는 상법개정안

정부는 최근 부진한 민간 설비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10조원 규모의 민간·공공 투자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국가 예산을 직접 시장에 투자해 경기를 진작시키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볼 때 정부예산이 투자된 사업은 시장 독점력을 갖지 않는 한 살아남기 어렵다.

첨단 기업 70%는 소유와 경영 일치 #소유와 경영의 분리 되레 비효율적 #과도하게 대주주 의결권 제한하면 #기업의 창의적 경영 도전 가로막아

그런데도 정부가 민간투자 확대보다는 정부 예산 확대 방안을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의문을 풀려면 최근 정치권의 행보를 봐야 한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부터 지속해서 상법 개정을 주장했다. 그 핵심은 최대주주의 경영권 행사에 대한 견제장치 법제화다. 구체적 목적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의 보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이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적으로 바람직한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나라마다 형편이 다르고 산업 발전 단계에 따라서도 소유와 경영이 어떤 형태에서 가장 효율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역사가 긴 국가에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보편화했지만, 한국에선 기업의 역사가 짧아 아직 분리가 진행 중이다.

시대착오적 상법개정안 추진

세계 시가총액 10대 기업 가운데 7곳은 오너 경영을 통해 회사를 키워 왔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빌 게이츠(마이크로 소프트), 제프 베조스(아마존), 스티브 워즈니악(애플 공동창업자), 마윈(알리바바),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래리 페이지(알파벳)는 회사를 직접 이끌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세계 시가총액 10대 기업 가운데 7곳은 오너 경영을 통해 회사를 키워 왔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빌 게이츠(마이크로 소프트), 제프 베조스(아마존), 스티브 워즈니악(애플 공동창업자), 마윈(알리바바),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래리 페이지(알파벳)는 회사를 직접 이끌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더구나 지금 세계 경제가 4차 산업혁명 속으로 진입하는 상황에서는 소유와 경영을 둘러싼 양상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 경제가 O2O(online to offline,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하는 현상) 체제로 전환하는 상황에서는 소유와 경영의 일치는 더욱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세계 시가총액 10대 기업 중 7개사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정보기술(IT) 기반 플랫폼 사업자들이다. 페이스북·아마존·알리바바 등은 모두 소유와 경영이 일치돼 있다. 이것은 더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개별 기업과 국가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은 신중하게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목적으로 하는 개정안으로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을 들 수 있다.

집중투표제는 1997년 상법 개정을 통해 이미 국내에 도입돼 있다. 다만 정관으로 이를 배제한 기업의 경우에는 단순투표를 통해 이사를 선임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여당은 현행 집중투표제가 사실상 사문화돼 최대주주를 전혀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2조원 이상 상장기업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이를 시행하는 개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집중투표제를 배제한 배경을 봐야 한다. 왜 그랬을까. 이사 선임 과정에서 대주주들 간 극심한 경영권 확보 경쟁으로 인한 혼란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실정에 맞춰 운용하고 있다. 미국에선 일부 주가 이를 강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주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집중투표제를 시행하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일본에선 집중투표제를 실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정관으로 이를 허용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나 일본이 집중투표제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는 불필요한 경영권 위협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합작 법인인 경우에는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 협력해 공동으로 투자와 경영을 해야 하므로 집중투표제가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일본처럼 집중투표제를 실시하고 싶어 하는 기업만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또 정부와 여당이 도입하고자 하는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의 소액주주들이 자회사의 경영진을 상대로 직접 책임을 묻도록 하는 제도다. 즉 모회사의 지분을 1% (상장사 0.01%)만 소유하면 모회사는 물론이고 자회사의 경영진을 상대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우량 기업들이 지주회사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외국 투기자본이 지주회사 지분의 1% (상장사 0.01%)만 소유하면 모든 자회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9월 국내 지주회사는 총 173개에 달한다. 지주회사 1개사 평균 10.8개의 자회사 및 손자회사, 증손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1870여개 국내 기업이 외국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경영권 견제만큼 보호 필요

감사위원 분리 선출 역시 주주 의결권 자체를 법률로 제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감사나 감사위원 선임 시 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 현재는 사내이사 감사위원 선임 시에만 3% 룰을 적용하고 있는데, 개정안에서는 모든 감사위원 선임에 3% 룰을 적용한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외이사를 반수 이상 선임해야 하는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이사 상당수가 대주주와 무관해도 이사회 구성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현재도 3인 이상인 감사위원 중 사내이사 선임 시에만 별도로 선임하고 3% 룰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 역시 주주의 의결권 제한이라는 점에서 주식회사의 기본 원칙을 위협하는 상법개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이사 선임 시 1주당 선임이사 수만큼의 투표권을 부여해 일시에 투표하도록 한 제도다.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지만, 외국 투기자본이 경영권 위협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다중대표소송=자회사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모회사 주주가 불법 행위를 한 자회사 혹은 손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한 제도. 다중대표소송제를 입법화해 의무화한 나라는 일본밖에 없지만, 일본은 100% 자회사로 한정하고 있다.

경영권 보호제도의 법제화 필요

이사회란 상호 견제보다는 모험적 경영판단을 함께 감수하는 위험 공동체가 될 때 비로소 그 기업의 운명을 책임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내 상장사 대부분이 모험적 경영판단을 회피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확산하면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지 않는 한 경영권은 물론 근로자 일자리도 잃는 참담한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당위성을 부여한 정부와 여당의 상법개정안은 시대에 역행하는 상법 개정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외국계 헤지펀드의 경영권 위협이 일상화돼 있는 현실을 고려해 볼 때 더욱 그렇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의 탄생도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유니콘 기업의 대부분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과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매수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하는 포이즌 필 등을 통해 경영권이 안정된 상태에서 비약적 성장을 하고 있다. 이는 우리 상법에도 경영권 방어장치를 법제화해야 한국에서도 유니콘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상법 개정을 통해 경영권자에게 차등의결권과 포이즌 필 같은 경영권 방어제도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정작 대기업들은 정관을 변경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홍콩이나 뉴욕거래소에 상장하려는 국내 유망 벤처·중소기업들에는 큰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상법 개정의 단골 모델이었던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마저도 이미 2005년 신회사법에 차등의결권과 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했다. 경제에 국경이 없어져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한국도 기업들 스스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프랑크푸르트대 상법 박사. 대한상사중재원 상사중재인과 기업소송연구회 회장을 지냈다.